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최근
비틀즈의 <아이가 집을 나갔어요 She's leaving home>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었다.
대중적 인기는 물론이고
클래식 전문가로부터 "슈베르트의 가곡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들었던 이 노래는
오늘날의 치유에서 매우 중요한 영역을 다루고 있다.
가출한 딸을 찾는 신문 기사를 본 폴 매카트니가
부모와 딸의 입장을 상상하며 가사를 썼다는데,
비틀즈가 시대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을 알 수 있다.
현대의 성공한 중산층 혹은 엘리트 부모들 중에
자식이 기대에 못 미치고 반항이 심할 경우
"필요한 것을 다 주었음에도
무엇이 부족해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고충을 호소한다.
비틀즈는 이런 현실과 그 이유를 정확히 짚어냈다.
실제 가출 기사의 주인공이었던 소녀도
자신의 심정을 잘 짚어내서 놀랐다고 한다.
노래에서 깊은 위로를 받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한 인간의 양육은 네 가지 측면에서 동시에 이루어진다.
육체, 감정, 정신 그리고 영성이다.
현대 가정과 학교의 교육에서
가장 간과되기 쉽고 그 중요성에 무지한 것이
바로 감정 영역이다.
감정적인 공감과 지지가 결핍되면
다른 것을 다 준다 해도
아이는 세상에서 공허하게 떠도는 듯한 불안정을 느낀다.
오늘날의 치유는 이러한 측면을
"감정적 버려짐emotional abandonment" 혹은 "감정 학대emotional abuse"
라고 부르며 매우 중요시 한다.
먹고 사는 것이 어느 정도 해결된 현대인,
특히 중상층 가정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측면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감정 즉 느낌feeling이
치유의 핵심이자 모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식을 키우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가 감정을 느끼는 데 무능력하다.
자기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현상을
"감정적 무능력emotional unavailability"라고 칭한다.
나는 이 현상을 "감정 멍청이"라고 부른다.
감정 멍청이들이 잘난 체 하며
아이들을 체계적으로 학대하는 현장이,
오늘날의 이른바 "교육"이 아닐까,
나는 종종 깊이 의심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