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예상하고싶은 욕구의 절정에 결정론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이나 노스트라다무스, 마야 달력, 정감록 등이 근거로 소환되고,
오늘날의 뉴에이지 영성에서는 지구 상승ascension이 임박했거나 이미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은 그 과정의 증상으로 해석됩니다.
망할 징조 혹은 상승의 징조.
음모론도 본질은 같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어렵거나 불가능할 이유를 외부에서 찾는 것이지요.
대표적으로 일루미나티, 렙틸리언, 하나의 세계One World를 지향하는 그림자 정부 등이 거론되고
기독교의 사탄마귀론, 초기 사회주의 이론이 말하는 금융자본주의 이후 공산사회 도래설 같은 것들도 어둠의 본질을 나/우리와 무관한 타자에게서 찾는다는 점에서는 맥락이 같습니다.
저는 이러한 것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쭉 섭렵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대 때는 사회주의 이론과 세계 체제론을 진지하게 들여다 봤고,
치유적 영성의 길에 접어든 이후로는 결정론과 음모론을 꾸준히 읽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관심을 갖고 봅니다.
제 결론은 두 가지입니다.
- 이 모든 것들이 진실 혹은 현실의 일단을 보는 데 도움이 된다.
- 내 인생에서 어떤 결정론도 음모론도 적용하지 않겠다.
저는 한 인간으로서, 특히 치유가/영성가로서 순진하게 평화를 노래하고 싶지 않습니다.
인간 에고의 절망적인 제약성, 현실의 구조적 족쇄, 보이지 않는 차원의 어둠을 간과하는 그 어떤 논리도 저는 듣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꿈과 희망을 설득할 수는 있어도, 경험으로 나를 가르쳐줄 만큼 실제적인 삶을 살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직 평화를 노래할 것입니다.
모든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만 남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증거와 조짐을 찾자면 매일 매순간 수백 만 가지를 찾아서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공포와 무기력에 사로잡혀 자신의 누에고치 바깥으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자신의 불안과 고통을 증폭시키고, 정보를 빙자하여 그런 에너지를 또 확신을 갖고 전파합니다.
파장을 낮추는 세력에 동조해버리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음모를 꾸미는 자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세상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 것.
그래서 자신들의 방식이 지속되는 것.
치유의 시작은 새롭게 대응respond하는 것입니다.
현실의 관행에 따라, 자신의 익숙한 감정과 습관에 따라 자동으로 반응reaction하는 패턴을 멈추는 것입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실천하면 됩니다.
그것이 매트릭스에 균열을 냅니다.
그 균열을 통해 새로운 것이 싹을 틔우고, 때가 되면 크게 솟구치고, 결국 새로운 시스템을 창조할 것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평화와 풍요의 세상이 올 것인가?
모르지요.
보장되면 하고, 보장이 없으면 안하는가?
그럴 수도 있겠으나, 자신을 치유가/영성가/지성인이라 부르지 않으면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스스로 규정할 것인가?
나는 살아있는 동안 매순간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걸음을 내디뎠으므로,
나는 이러한 사람이라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면서, 내 안의 창조주를 만날 것입니다.
꽤 많은 종교인, 영성인들이 그러더군요.
너는 이단이고, 부처님의 바른 법도 모르고, 스승을 떠났으니 너의 깨달음은 끝이다, 순진한 이상주의자라 세상에서 네가 제일 걱정이다 등등.
몇 년 동안 그 분들의 말씀을 깊이 숙고해봤습니다.
그리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엉뚱한 길을 가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최악의 경우 지옥에 가 있을까요?
저는 의식 안에 지옥을 창조하지 않습니다.
설혹 지옥에 있더라도 지금처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부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말할 것입니다.
당신들의 가르침을 울면서 되새기고 저 자신에게 적용하려고 애썼어요.
코로나 바이러스? 경제 위기? 어둠의 세력? 음모?
세상이 이 지경인 것은 부처님, 예수님이 안 도와줘서도 아니고
인류의 운명이 구원/멸망으로 결정되어서도 아니고,
어둠의 세력이 음모의 매트릭스를 강하게 펼쳐서도 아니고,
자본주의가 그 자체로 살아움직여서도 아니고,
그냥 우리가 어떤 의식을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하는가의 문제일 뿐입니다.
다수가 깨어나서 다수가 선택하면 그것이 현실이지요.
그러한 역동성이 지금 장대하게 펼쳐지는 땅이 한국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상처와 혼란, 갈등, 숨막히는 의식의 전투, 치유, 새로운 가능성.
미리 결정된 것은 없습니다.
오직 가능성이 있을 뿐이지요.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하는가?
이것에 대한 답을 명확히 하는 것으로 이 한 생은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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