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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나, 그대, 세상

한때의 낙관, 한때의 실패, 기나긴 성공, 그리고 진행 중

HaloKim 2022. 3. 12. 04:28

힐러들과 함께 동학혁명 최후 격전지인 우금치를 찾은 적이 있다.

함께 세미나를 한 후 현장에 가서 각자의 방식으로 역사와 대면하며 치유하도록 했다.

그 다음 해에는 여수순천 학살 현장에 갔다.

코로나 터지기 직전 두 해의 일이다.

 

치유를 깊게 들어가다보면 한 개인 안에서 역사를 만나게 된다.

많은 비극과 고통이 가정에서 비롯되고 당연히 양육 과정과 연관되는데, 그것이 부모 개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기 어려운 측면도 많다.

사회문화적 시야가 치유가/ 영성가에게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우금치에 갔을 때 안팎으로 신비로운 경험들을 했는데, 성모님의 말씀을 들었다.

만고에 내 마음 속 생각이니 미친 년 헛소리라고 욕해도 된다.

 

"동학농민혁명을 실패라 생각지 않도록 하라.

그들은 나의 군대였고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이 골짜기로 걸어들어왔다.

많은 이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였으나 많은 이들이 조선과 만주로 흩어져 독립운동의 젖줄이 되었다.

한국이 그토록 엄혹한 식민통치에서 불과 35년 만에 벗어나고 이토록 짧은 시간 안에 풍요와 민주주의를 구가하게 된,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성공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동학군들은 백 년에 걸친 역사적 승리의 서막을 연 것이다."

 

이 관점은 충격이었다.

한국사를 전공한 나는 근현대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비장한 노력과 실패라는 트라우마적 관점에 시달렸다.

 

조사 결과 실제로 천주교 박해를 피해 들어간 선교사와 신자들이 성모님께 봉헌하며 구원해주십사 기도했다는 사실, 인근의 사찰과도 활동을 같이 했으며 현재 그것을 기념하는 천주교 성지가 있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절의 법당 안에서 오래도록 명상하고, 그 성지의 성모상 앞에서 무릎꿇고 긴 기도를 했다.

 

이번 대선 과정을 보는 내내 저러한 관점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물론 지난 10여 년의 한국 사회를 보며 감탄도 하고 한없는 낙관도 한때 가졌으며, 불안과 조바심으로 안절부절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변에 흐르는 관점은 한국 땅에 태어난 모든 존재의 자유의지가 어디로 모아져 흐르는지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내가 선택하는 방향으로 의지는 모으겠으나, 집단 의지의 선택을 존중하며 함께 구불구불 굽이쳐 바다를 향해 간다는 마음.

 

이러나 저러나 길게 보면 별 차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인간은 거기서 거기다.

자신의 욕망과 공동선에 대해 적당한 비율로 조합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욕망의 실현을 우위에 두고 사회적 선 또한 개인을 통해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혹은 주장하는 사람은 다른 가치 체계를 제도화 하려는 이들에게 좌파 빨갱이라 욕하는 경향이 있다.

공동선이 더 높은 선이라고 보는 사람은 개인의 욕망에 과몰입하며 독점하려는 이들에게 수구 적폐라고 욕한다.

 

한국 현대사를 조망해 볼 때, 개인 욕망과 공동선이라는 가치는 그 나름대로 빛과 그림자가 있다.

서로 얽히고 대립하면서 사회와 정치를 움직이는 추동력으로 작용한다.

 

나는 언제나 공동선을 지지해왔으나 동시대 진보주의에 대해 매우 큰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

운동권과 언론, 문화계를 직접 거치면서 진보 진영 내부의 성장 과제에 대해 생각한 지 오래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진보주의의 배에서 내릴 생각이 없다.

치유가로서 나의 실천 방식은 영적 진보주의로 통합된다.

영적 진보주의는 정치적 보수주의자와 함께 할 수 있다.

 

21세기 진보주의의 개념과 정치사회적 아젠다는 이제부터 새롭게 찾아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을 찾아가는 방향타는 청년 세대의 미래라는 관점일 것이다.

 

이번 대선 결과를 보고 나는 이틀동안 깊이 슬퍼했다.

내가 생각하는 선의 방식이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감정을 허용하며 애도하니 생각보다 빨리 일상적인 명료함으로 되돌아왔다.

 

이번 대선은 한국인의 집단 의식에 대해 보여줄 것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정보를 몰라서 선택을 고수한 사람들도 있겠으나, 캐스팅 보트는 알고도 선택한 부류의 손에 있었다.

 

그 자유 의지가 행하는 실험을 막을 도리는 없다.

존중하며 함께 또는 대립하며 각자의 경험을 창조하는 것이 물질 세상의 이치이다.

 

나는 앞으로도 종종 깊이 슬프겠으나, 100년의 승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살아있을 30년의 흐름을 염두에 두면서 하던 일을 하며 살아가겠다.

 

이번 대선 결과는 절반이 넘는 투표자들이 나와 같은 스탠스를 취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코로나 시국, 경제 위기, 정치와 언론의 대혼란 속에서도 집단 의식의 어떤 물줄기가 뚜렷이 우리 눈 앞에 등장한 것이다.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그 물줄기 속에서 함께 눈을 뜨고 다 같이 흐를 것이다. 

 

지난 백 년 동안 누군가는 식민 통치를 영원히 누리고 싶었을테고 누군가는 영원히 집권하고 싶어 했다.

한때 가능했고 길게는 불가능했다.

오늘도 누군가는 꿈꿀 것이다. 자기 권력의 영원함을.

 

이 또한 긴 눈으로 지켜보면 흥미롭겠다.

 

대선의 소회를 마치고 나는 원래의 힐링 장사꾼으로 되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