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영성이 심화되면서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 이거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신비화 시키고 끝없이 돈 갖다 주게 만드는 무기가 될 수 있겠구나.
그건 힐러가 아니라 교주다.
내가 누군가의 인생에 그런 짓을 한다면 끔찍한 일이다.
그런 짓을 하면서 스승님, 마스터 등의 호칭을 쓰게 한다면
한없이 하찮은 명예와 무거운 에고 놀이로 내 삶의 목표를 망가뜨리게 될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해 자랑스러운 점 중 하나는
교주가 될 가능성이 1도 없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모든 위험성을 차단하기로 마음 먹었고,
나름의 원칙을 정해 철저히 실행해왔다.
1. 치유와 치료를 엄격히 구별한다.
에너지 힐링은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만약 내가 병을 치료해준다는 식으로 말하면 문제의 소지가 폭발한다.
질병 치료는 의사가 하는 것이고, 힐링은 에너지체를 활성화 시킴으로써 스스로를 강화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엄격히 구별지어준다.
2. 감사의 대상을 자신과 근원으로 한정시킨다.
치유의 효과는 감동적인 데가 있다.
그래서 힐러에게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때마다 나는 당신이 해놓고 왜 나에게 고맙다 하느냐고 진지한 얼굴로 토를 단다.
단톡방에서도 내 글에 고맙다는 답을 달면 나는 반응을 하지 않는다.
특히 존경한다느니, 특별하다느니 하는 말은 원천적으로 싹을 잘라 버린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무안해하며 진심을 설명하느라 애쓰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들 자신이 잘 한 거라고 기꺼이 말한다.
자존감 트라우마, 자기 의심을 치유하는 것이다.
뭔가 뿌듯한 경험을 했을 때는 개인적으로 아이처럼 자랑하면서
"선생님, 칭찬해주세요" 하는 정도의 애교를 부리는 선에서 끝난다.
나는 마땅히, 힘껏 칭찬해 준다.
모든 성취의 기억이 자신 안에 쌓여 힘이 되도록.
고맙다는 말이나 선물이 처음에는 진심과 순수한 선의에서 출발한다.
그렇게 하는 것을 예의라고 여긴다.
그러나 힐러가 이것을 허용하기 시작하면 결국 무언의 규칙이 된다.
주는 사람, 받는 사람, 지켜보는 사람 사이에 눈치 게임이 벌어지고, 서로가 서로를 컨트롤 하게 된다.
일상에서 질리도록 하는 에고 게임을 힐링의 장에서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나의 목표는 힐러와 함께 하는 모든 순간에 치유의 본질을 집약적으로 경험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마치고 감동에 젖어 있을 때,
짤막한 감사의 기도를 제안하되 대상을 자기 자신과 근원에게 국한시키도록 권유한다.
이제는 아무도 나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고맙다.
3. 사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치유가 작용하는 원리 중 하나는 돌보는 이의 역할을 분명히 하는 데 있다.
힐러는 돌봄을 주는 역할을 계약한 자이고, 그 역할에 깔끔하게 충실할수록 치유 효과가 크고 빠르다.
사적인 관계란 서로의 삶에 대등한 관심과 애정을 허용하면서 돌봄을 주고 받는다.
힐러와 클라이언트가 사적인 관계를 형성하면, 서비스의 본질이 헷갈리고 경계선이 불분명 해진다.
이는 치유가 아니라 또 하나의 복잡한 인간 관계를 만들어내고 상호 종속에 빠져 든다.
힐러의 직업 윤리 위반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인 초대나 호의에 응하지 않는다.
공개된 비용 외에는 베푸는 역할도, 받는 역할도 하지 않는다.
겸손히 진심을 다한다 해도 계속 베풀 여력이 있는 쪽이 관계의 우위에 서서 훈수를 두게 된다.
받는 쪽은 눈치 보고 고마워 하다가도 나중엔 당연시 하고 열등감을 만회할 게임 거리를 찾게 된다.
힐링의 이름으로 이런 에고의 드라마를 겪게 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모두가 줄줄이 자기 비용을 계산하는 모습이 자리 잡았다.
4. 비용을 공개적으로 밝힌다
내가 제공하는 모든 치유 서비스의 종류와 비용을 웹사이트와 블로그에 적어놓고,
공개 워크샵에서도 일목요연하게 밝힌다.
처음 온 분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데, 시간이 지나면 "깔끔해서 좋다"고 한다.
공개된 비용과 원칙 그대로 모든 것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비용 수준에 대한 의견 차이는 있을지라도, 자기가 모르는 거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협동조합도 설립 초기라 몇 푼의 돈을 처리하는 원칙을 토론하고 다듬고 매만지느라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데, 다들 그러려니 한다.
4바디 힐러들 역시 일을 할 때 비용 문제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대처한다.
선명한 것이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5. 나는 장사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치유와 영성은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뢰, 존중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이것은 힐러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순식간에 전달된다.
애써 드러낸다 한들 그 깊이가 어디인지 금방 파악 당한다.
치유와 영성에 진지한 사람들은 에너지와 의식이 매우 민감하기 때문이다.
힐링을 하다 보면 "좋은 사람" "따뜻하고 진실한 사람"이라는 평을 자주 듣게 된다.
심지어 자기 인생에 이런 사랑은 처음 경험해본다며 울기도 한다.
그럴수록 나는 스스로를 김치찌개 장사에 비유하곤 한다.
찌개 값을 받으면 무조건 한 그릇 끓여내는 것일 뿐,
내가 착한 사람이거나 당신에게 각별한 인간적 호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힐링의 목표 중 하나가 좋은 사람, 좋은 관계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주는 것이다.
"좋은"이라는 라벨을 붙여놓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도 좋은 사람이 되려 애써 희생하고, 애쓴 만큼 돌려받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것이 고통의 출발점이다.
관념의 환상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과 주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힐링의 출발점이다.
6. 힐링을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치유나 영성을 고상하고 숭고한 무엇인 체 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영성과 물질성을 통합하지 않고 이원론으로 분리시키는 것이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 나는 알고 있다.
지구의 삶 자체가 물질적인 게임의 법칙 안에서 배우고 성장하도록 설계된 것임에도,
영성이 깊어지려면 그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무지와 무책임의 극치다.
치유와 영성은 삶의 기술을 연마함으로써 지나치게 애쓰지 않고 순조롭게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아는 가장 절묘한 표현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온다.
애쓰지 않고 저절로 행하는 상태를 "무위"라 칭하며
그렇게 되도록 힘써 애쓰라는 뜻으로 "위무위"를 말한다.
힘써 애쓰지 않고 물질에 초연하다고 말하는 영성가를 나는 믿지 않는다.
깊은 생존 불안을 억누르느라 혼자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수도꼭지처럼 틀면 돈이 나올 구멍, 하다못해 호구라도 옆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내려놓는 비결은 일단 게임의 법칙을 존중하고 배우는 데서 출발한다.
힐링 비즈니스를 강조하는 두번째 이유는,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도록 권유하기 위해서다.
진지한 영성가들은 자연스럽게 돌봄과 치유, 상담과 코칭의 자질을 드러낸다.
그 자질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타인에게 유익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성장과 배움을 지속할 수 있는 유력한 방편이 된다.
특히 인간 에고의 본질과 가족의 역동성, 사회 현상 등에 대해 훨씬 심도있게 깨우친다.
시야가 넓어지면 진실로 겸손해지며, 이 자질이 스스로를 위대함으로 이끈다.
이 자질을 자산 삼아 체계적인 비즈니스를 할 수도 있다.
돈 버는 행위가 상처나 치욕이 아니라,
자존감을 회복하고 가족 관계와 주위의 인간 관계를 긍정적으로 풍부하게 전환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방식의 비즈니스를 통해 돈에 대한 느낌이 긍정적으로 변화한다.
사람들은 돈을 필요로 하면서도 돈을 경멸한다.
버는 것과 쓰는 것의 조화를 이뤄주면 나에게도 유익하다.
어떤 힐러가 말했다.
"쌤, 나는 우리 시스템이 마음에 들어요!"
그래서 나는 힐러이자 영성가이자 자영업자다.
나는 이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나에게서 배운 힐러들 또한 특별하고 남다른 사람으로 여겨질 만한 위험성을 차단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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