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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로의 치유와 성장

성장기 트라우마 - 착한 사람 증후군

HaloKim 2020. 7. 5. 11:42

내가 자존감이 아주 낮다는 것을 치유 과정에서 알았다.

성장기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부모님의 욕구 불만을 위로하는 역할을 했다.

이는 동생들을 보호하고 지켜주고 싶다는 열망과 짝을 이룬다.

 

이런 역할 설정은 아이의 상상일 뿐이다.

어린아이가 약간의 위로는 줄 수 있을지언정 어떻게 어른들의 내면에서 증폭되는 균열과 결핍, 나르시시즘의 블랙홀을 채울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런 아이/내면아이가 설정한 자기 미션은 영원히 도달 불가능하다.

내적으로 언제나 실패하는 사람이라는 자아 관념이 잠재의식에 깊숙이 각인된다.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자기 이미지와 극심한 충돌을 만들어낸다.

공부 잘해서 좋은 학교를 가더라도, 어디 가서 인정받고 돈도 벌어서 집안에 제법 착한 역할을 하더라도,

이는 자존심pride과 책임감 증후군을 강화시킬 뿐 내적인 자존감self-esteem과는 무관하게 겉돈다.

나는 자존심이 높았기에 그토록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채기가 훨씬 더 어려웠던 것이다.

 

사회 생활에서도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불안정한 사람의 기운과 욕구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그것을 채워주는 "착한 사람"으로 살려고 한다.

이것이 통하는 단계와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나이 들수록, 성공을 할수록, 안팎에서 요구받는 규모와 종류가 늘어나므로 자기 혼자 "가랭이가 찢어진다."

 

불완전한 강자를 위로하고 약자를 지켜주겠다는 무의식적인 꿈이 자신을 돌보는 대신 방치하고 희생하고 급기야 스스로를 망가뜨리게 된다.

 

내면에서는 이미 벅차고 불가능함을 수도 없이 절감하고 절망하면서도

그런 식으로 인정받는 것 외에는 다른 삶의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내적인 붕괴가 필연적이다.

 

이것이 내 삶의 패턴이었고, 버티고 버티다가 그 어느 한 요소도 작동하지 않을 때까지 철저히 몰락했다.

외적인 계기는 건강이었지만, 원인은 삶 자체의 구조였다고 볼 수 있다.

 

나의 치유와 영성은 이것 자체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작업이 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4바디 힐링(육체-감정체-정신체-영체의 포괄적 전환)을 세밀히 시도하게 되었다.

 

치유된 고통은 자산이 된다.

 

자존감 부족은 치유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장애 요소로 나타났지만

그것을 회복하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치유/영성이란 결국 자기 확신self-confidence의 여정임을 뼈저리게, 진실로, 거듭 이해했다.

 

또한 모든 치유가/영성가들이 마스터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존감 트라우마를 본질적으로 겪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 자신이 예수와 똑같이 창조주의 분신이라거나, 내 안에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이 있다, 혹은 신이란 존재하지 않고 나 자신이 내 우주의 주인이다, 치성하는 에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아이고 공하다, 이런 어머어마한 자기 확신을 처음부터 제정신으로 온전히 갖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진리와 현실 사이의 엄청난 갭, 즉 자존감 트라우마를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뛰어넘어 자기다움I-ness을 정의하고 창조해 나갈 뿐이다.

 

이는 모든 위대한 존재들의 여정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수도, 부처도 처절하게 길을 찾아나가신 시기가 있고

노자 또한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자기 안으로 끝까지 들어갔다고 적었다.

 

그래서 흔들리는 내가, 당신이, 우리가 제대로 된 길 위에 서 있다고, 힘을 내시라고, 언제나 말할 수 있다.

 

지금도 나는 과거의 잔재에 자주 직면한다.

이를테면 예기치 못한 칭찬을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멍 때린다.

낯설고 불안하고 의심하던 흔적이다.

 

미세한 틈으로 미끄러져 블랙홀을 마주하고 얼어붙을 위험이 상존하므로

한 번 깨우치니 다 이루었다, 예수를 영접하면 천국이 확보된다, 어떤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면 어센션의 지름길이다, 이런 말을 믿지 않고 나의 내면이 나의 승부처가 되도록 본능적으로 집중한다.

이것이 나의 성장 동력이다.

 

또한 클라이언트와 학생분들이 길을 헷갈리는 순간이 민감하게 감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럴 때 즉시 뛰어들어 정면 승부를 벌이는 편이다. 

 

이런 노력을 그 분들이 신뢰하고 내 곁에 머무르고 나를 먹여살려주므로 

내가 가치있는 인간인가보다, 느끼고 신뢰할 근거를 얻는다.

그 존재들이 없다면 나는 텅 빈 자아의 우주에서 떠돌 가능성이 크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

유리한 것은 감사하고 불리한 것은 아량이 있어서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불리함의 덫에서 애쓰다가 오늘의 유리함을 얻었고,

그 유리함이 불완전하기에 불리한 습에 깨어 있으려 노력한다. 

 

고통과 축복은 같은 얼굴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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