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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로의 치유와 성장

무아 vs 창조주

HaloKim 2020. 7. 7. 09:32

공부가 경지에 오르고 나면 무엇이 있는가 - 무아인가, 창조적 질서인가?

영성가들 사이에서 이는 존재 전체를 건 질문이 된다.

 

환상을 넘어 참된 것을 구하는 마음이 진실로 삶의 일순위인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그리하여 입증된 문헌들과 사람을 면밀히 사숙하고, 자신의 내적 경험을 가림없이 투명하게 살핀다.

 

나는 스스로를 영성가라 칭한다.

나 역시 이런 문제가 중요하다는 자기 고백이다.

 

그런데 무아나 창조주를 논쟁의 영역으로 끌고오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물론 내 삶 전체를 자원으로 하는 숙고와 치열한 공부와 경험이 있다.

나름의 방향을 얻었고, 이제 신발끈 동여매고 또 열심히 나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나와 똑같이, 나보다 더 치열하고 진실하게 길을 나아간 동서고금의 사람들이 일견 상반되어 보이는 진리를 기술해 놓았다.

 

내가 무엇을 확신하고 선택했기로서니 다른 무엇을 덮을 수 있는가?

무례하고 무엄한 일이다.

 

나는 여전히 두 방향의 진리 앞에 눈과 귀와 마음을 열고 길을 찾을 뿐이다.

굳이 내 방식을 질문하고 진지하게 적용해보시겠다는 분들께 적절히 나눌 뿐이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감이 잡힌다.

그게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이.

 

명상에 들면 아무 것도 없는 공이 펼쳐진다.

그런데 공함과 무아를 인식하는 나의 의식은 선명하게 깨어 있다.

없는 중에 있는 것이다.

 

신적인 존재들, 은하와 우주와 차원이 보이고 느껴지고 인지되고 때로 들린다.

그러나 고정된 형태가 없고 끊임없이 출렁이며 변화한다.

있는 중에 없는 것이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표현으로는 "창조적 공creative voidness"이고

노자는 불멸의 존재들이 거하는 가물가물한 계곡이라고 묘사했다.

 

특히 내가 두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가 있다.

 

호킨스는 인간 에고를 끈질기게 탐구했다.

이렇게 해야 치유가 가능하다.

대충의 논리나 수완으로 덮어서는 해결이 안 난다.

 

노자의 도덕경은 전 세계에서 경전급으로 여겨지는 문헌 중에 드물게 필자 자신의 직접적인 목소리가 있다.

그런데 한없이 웅장하고 한없이 진솔하다.

 

"나는 스스로를 의심하며 거친 바람과 풍랑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으나 그럴수록 끝까지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그래서 우주가 이렇게 보이고, 내 삶은 멀티 태스킹(병작)을 하며, 남의 눈에 초라해보일지 모르나 스스로 위풍당당하다.

내가 너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뭐하러 신경쓰겠는가?"

이런 식으로 말한다.

 

이런 시선으로 성경과 불경, 수많은 문헌을 읽으면 또 다른 의미들이 풍부하게 감지된다.

 

진리와 실재는 내가 어디서 주워들은 것 이상으로 거대하구나.

"이것이 무엇이지?"라는 질문만이 참된 나의 것이고, 지금의 내 수준이다.

내가 아는 바가 하찮다는 사실이 한없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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