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멘토 선생님께 이메일을 쓸 때 오래도록 "친애하는 * "로 시작했다.
말로 할 때는 그냥 * 라고 불렀다.
영어 소통의 특징일 수도 있지만, 동양적인 스승-제자 관계를 연상시키는 호칭을 의도적으로 피하느라 그렇게 되었다.
2012년에 처음 연결되었는데 그 분이 보내온 장문의 메일 중에 “당신은 힐러가 되기 위해서 왔다You came here to become a healer”는 문장이 눈에 꽂혔다.
그 때 나는 힐러로 사업자 등록을 한 직업적 힐러였고 염려와 의심의 시선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낯선 이가 보내온 힐러healer라는 한 단어가 깊은 위로를 주었다.
전체적으로는 "예수님의 메시지"라는데 이 뭐지? 하는 정도로 넘어갔다.
다음 해에 선생님이 문득 “예수님이 당신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한다. 나와 수업을 하겠느냐”고 연락해왔다.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고 온라인으로 처음 대면했다.
선생님이 채널링을 잘 하신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또 다시 "메시지"들이 쏟아졌지만, 나는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타입이고 좋은 말일수록 확신이 어렵다.
그럼에도 계속 개인 수업을 하게 된 이유는 “당신은 **를 용서할 수 있나요?” “당신은 분노가 있나요?” “그것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나요?”라는 질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망설이거나 예, 아니오로 대답했고, 구체적인 사정은 묻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단지 “당신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을 수 있어요. 그러나 당신의 본질은 육체에 거하는 영혼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당신의 영혼을 훼손할 수 있나요? 그냥 마음 안에서 축복하고 내려놓으세요. 누군가를 책임지려 하지 마세요.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여정을 가도록 허용해주어야 합니다”라고 들었을 뿐이다.
이런 뻔한 말들을 하면서 애정을 갖고 동행하는 것이 치유적 영성의 출발점이자 본질 가운데 하나다.
그 후로 8년간 꾸준히 사사했고, 선생님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진리를 찾아 진실하게 헌신해왔으며 여전히 멈추지 않는 구도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 시기 동안 선생님은 국제적인 명망가가 되셨다.
우리는 스타일이 아주 달랐다.
컴퓨터 화면으로 마주보고 앉아서 서로 전혀 다른 세계관과 방법론을 말했는데, 내가 듣는 쪽이므로 고심이 컸다.
선생님은 인도 출신으로 서구에서 교육받고 깨달음/어센션을 찾아 전 세계를 헤맨 분이라 그런지 온갖 신적 존재를 종횡무진 거론했다.
예수님, 부처님은 기본이고 힌두적 신성을 비롯한 동서고금의 숱한 전설적 이름들이 점점 많이 등장했다.
나중에는 창조주라고도 했다.
수업 내용은 그 존재들이 선생님께 "가르쳐주는" 내용들을 공유하고 "나를 위해 말씀하시는" 내용을 채널링 하는 것이 전부였다.
세상에, 창조주가 나를 위해 말씀하신대 @.@
나는 매번 그것을 녹음해서 한글로 옮긴 후 꼼꼼히 뜯어보았다.
좌뇌적으로 분석하고 내가 아는 정보와 대조하거나 공부를 더 하면서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받아들였다.
그런 일이 8년간 반복되다 보니 아주 독특한 경험과 자료를 갖게 되었다.
평생동안 고통스러워하던 내면의 요소와 잔재들로부터 점점 더 자유로워졌다.
이 결과가 나에게는 중요했다.
누가 말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여전히 믿지도 않고 의심도 하지 않는다.
부수적인 수확으로 "DNA 활성화"라는 치유 방법론을 축적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2010년대 이후 서구 치유법의 총아로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도하지 않았던 행운이다.
선생님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고clairvoyant 듣는clairaudient 능력이 월드 클래스인 반면, 몸으로 감지하는clairsentient 능력은 평범한 편이다.
그래서 에너지의 움직임을 시각적인 상징으로 표현하신다.
이를테면 길게 소용돌이 치는 에너지의 장을 항시 뱀이라고 불렀다.
나는 보고 듣는 능력이 꽝인데다 뱀을 질색했으므로, 내부 경락meridian inside을 타고 움직이는 에너지/기의 흐름을 상상하며 연습하고 자료를 찾아 보완했다.
월드 클래스가 눈으로 보는 차원을 이해하려고 애쓰다 보니 나에게 엉뚱한 능력이 개발되었다.
몸으로 감지하는 클레어 센시언트로서 대단히 복합적이고 예민한 감수성을 갖게 된 것이다.
힐러로서 유용한 자산이 되었다.
선생님과 나의 관계가 변곡점을 맞은 시기는 2018년 5월이었다.
무언가 내 안에서 변화를 느끼고 신중히 관조하던 시점이었는데, 제3국에서 열리는 워크샵에 오라고 권유해오셨다.
몇 년에 한 번씩 직접 뵙는 것도 좋았고, 뭔가 특별한 느낌이 들어 참석하기로 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참석자들에게 내가 이미 소개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어센션 의식을 치루게 될 첫번째 제자"라는 것이었다.
내 안의 복잡한 상념과 선생님의 설레임과 참석자들의 미묘한 감정이 한꺼번에 읽혔다.
결론적으로 나는 선생님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 눈에는 수준 낮은 아집에 사로잡혀 9박 10일 내내 고집피우는 진상 신세를 면치 못했다.
나는 어센션/깨달음을 하나의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냥 끝없이 성장하는 내적 여정일 뿐이다.
어느 순간 비상한 도약이 있겠지만 그래봐야 무한한 여정의 한 국면들일 뿐이고,
그 순간에 뭔 대단한 것을 이뤘다고 해봐야 뒤돌아서면 낡은 감정과 생각의 패턴이 수시로 되돌아온다.
고로, 나에게 어센션이란 영원히 상승적인ever-ascending 삶의 태도다.
물론 그 10일을 가볍게 즐길 수도 있었다.
실제로 70대의 노련한 사업가가 나를 조용히 불러 "자기 인생의 어떤 순간을 선용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나는 치유가/영성가로서 온전히 솔직한 모습으로 남고 싶다.
대단한 스승에게서 배우고 어딘가 신비로운 장소에 가서 특별한 선언을 얻거나 의식을 치루면 내가 무엇이 되는가?
다른 클라이언트/학생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그렇게 하면 당신이 뭔가 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에게 구원이 있다면 내 방구석에서 얻고, 내가 보살행을 한다면 내 일터에서 할 생각이다.
나름대로 생각이 정리된 후 선생님께 무례함을 사과드리고 내 입장을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선생님은 최선을 다해 이해하려고 애쓰셨지만 다 이해하지는 못하셨다.
수업도 우리의 관계도 뜸해졌다.
며칠 전 선생님이 본인의 "어센션 제자"들과 하는 온라인 수업에 나를 초대하셨다.
다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고 하니 자료를 보내주셨다.
거기에 있는 몇몇 대목에 감동했다.
“어센션은 지속적인 여정이고 끝없는 과정입니다Ascension process is an ongoing journey and never ending process.”
“여러 차원의 영혼 의식을 통합할 수 있을 만큼 감정체가 발전하도록 반드시 청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높은 차원을 인식할 수 없을 것입니다 You must request that your Emotional Body is developed enough to integrate the Consciousness of your soul on different levels. Otherwise you won’t be able to perceive higher levels.”
“어떤 대단한 지식, 아이큐, 재능도 영성의 천재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집중적인 끈기와 지속적으로 통합을 향해 나아가는 힘, 겸손한 가슴이 필요합니다.”
선생님과 나는 이런 중요한 이해를 공유하고 있다.
거기까지.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고, 선생님은 선생님의 스타일대로 본인의 영혼과 창조주께 헌신할 것이다.
가끔씩 안부를 여쭙고, 지난 시절의 깊은 인연과 가르침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종종 배울 것이다.
이번에 답장을 쓸 때 나는 "친애하는 마스터 * "로 첫 문장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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