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었을까.
중학생 때 가졌던 어떤 이미지가 잊혀지지 않는다.
폭풍우 치는 밤바다였다.
초라한 배 안에서 돛을 세우고 균형을 유지하려는,
무의미한 노력을 필사적으로 하며 나는 공포심에 질렸다.
배 안에 타고 있는 나의 가족들은 무기력해 보였다.
30대가 되자 나의 삶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짙푸른 색깔로 보였다.
극도의 이성이 작동하는, 우울한 세계.
슬픔은 나와 세계 둘 다를 암청색으로 물들였고
나의 걸음은 어깨에 하늘을 지고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돈, 성취 같은 것들은 그 시절에 내가
가장 쉽게 버리곤 했던 것들이었다.
40세에 흘러들어간 어떤 단체에서 명상을 하라고 했을 때
내 안에서 파리하게 질식해가는 어린 아이를 보았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서 꾀죄죄하고
아무도 위로하지 않아서 눈을 감고
아무도 양육하지 않아서 세상 앞에 고개를 숙인.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주저앉아 통곡을 했으나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명상, 깨달음, 신의 모습은
그런 내면 아이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삶의 길일까, 찾고 찾고 또 찾는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는, 25년 쯤 걸린 도전과 몰입 이후
나는 비로소 홀로 가는 길을 택했다.
그 첫 입구를 통과하는 동안
다시 한번 극도의 두려움을 느꼈다.
나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끝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어두운 동굴에 혼자 들어가는 떨림이랄까.
가끔 바닥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3년 반이 지나자 확신이 왔다.
나의 걸음은 여전히 휘청거렸으나
이 길은 끝까지 갈 수 있겠다는,
살면서 처음 느끼는 감정이자
의문의 여지 없는 자연스러움이었다.
만 십 년이 지난 후,
편안하게 비 내리는 어느 밤 오랜 만에 걸음이 멈춘 성당의 성모상 앞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27년 전 간절하게 구했던 평화의 기도가 이루어졌구나
오래 걸렸네요.
아니 짧게 걸렸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평화의 위력은 컸다.
나는 스스로를 가장 혹사하던 시절 만큼의 성실성과 생산성을 되찾았다.
그러나 나를 파괴하는 측면이 없다.
나의 의도대로 펼쳐지는 속도가 놀라웠고
애씀없이effortless, 혹은 무위無爲라 부르는 삶의 원리들이 명확해졌다.
즉흥적이라 할 만한 동시성으로 이루어지는 창조,
이것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했던 동서고금의 현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느꼈다.
나는 여전히 삶의 파도 속에 머문다.
물이 나를 집어삼키지 않는다.
나의 모습은 차갑거나 뜨거우며
거칠거나 부드럽고, 비정하거나 헌신적이다.
요즘은 자주 생각한다
내 삶이 온전성의 연속이라고.
가끔 불완전하고 모호한 순간이 있으나
그것들은 또다른 앎이 드러나기 위한 모호한 어둠일 뿐이라고.
노자가 말한 검은 계곡.
그래서 누군가가 말한 거구나
신은 네 안에서 찾는 거라고
신은 기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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