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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서사의 가능성이 폭발적으로 열리다 -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HaloKim 2019. 1. 21. 06:44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최근에 본 한국 대중문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얼마 전 열풍을 일으켰던 ‘포켓몬 고’ 현상에서 영감을 얻었을 이 드라마는 증강 현실이 내포하는 여러 이슈들을 포괄적으로 짚어냈다.

일단 새로운 스토리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이 가장 주목된다. 앞으로 이 드라마에서 영감을 얻은 무수한 웹툰과 소설, 영화와 드라마 등이 탄생할 것이고, 한국 특유의 기술 문화와 결합하면서 세계적인 K-컬처의 자원이 되리라고 본다.

특히 현빈 캐릭터가 흥미롭다. 그는 흔히 예상하는 할리우드식 영웅이 아니라, 쓸쓸하고 어두운 구원자로 변모한다. 마지막 무대인 성당에서 최종 미션을 앞두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올려다 보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새로운 사회 현상을 개척해나가는 선구자로서, 특히 윤리적 인간이 감당해야 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몫을 수행하는 일종의 영적 구원자인 것이다. 이러한 서사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 품격 있는 문제의식을 부여했다.

배우 현빈의 다채로운 표정과 연기력, 부드러우면서도 세련된 남성미를 풍기는 얼굴이 이러한 서사를 납득시키는 데 큰 몫을 했다.

박신혜는 수동적인 여성상으로 추락했다는 아쉬움 섞인 비평을 들었으나, 때로는 신데렐라 컴플렉스를 넘어서서 분주한 주체적 여성상이 아닌 다른 종류의 여성성이 적절할 때도 있는 법이다.

따뜻한 공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지켜봐 주는 여성적 신성feminine divinity이 여기서는 의미 있었다고 나는 느낀다. 그녀는 카톨릭의 성모상이나 불교의 관세음보살 같은 문화적 원형을 구현하고 있다.

새롭게 탄생한 무수한 혼종적인 요소들 사이의 균열을 좋은 배우들이 마치 실을 매달은 바늘처럼 꿰어나간 경우다.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드라마 서사들, 이를테면 멜로 코드와 막장 캐릭터, 남성적인 우애 같은 것들을 차용해 옴으로써, 게임에 익숙한 하드코어 시청자 뿐만 아니라 나같은 문외한에게도 낯선 혼종hybrid 요소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친절한 드라마가 된 측면이 있다.

이 드라마는 증강 현실이라는 기술적 아이디어가 가져올 경제적, 비즈니스적, 문화적 효과를 예상하면서도, 그것이 인간 심리에 미칠 충격들을 깊이 있게 천착했다.

첫 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는 법이라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완벽한 완성도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정도 해냈으면 잘 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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