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후의 명곡>을 꼬박꼬박 챙겨본다.
초기에는 가수들의 가창력을 과시하는 고음 지르기가 경연의 승부수로 통했던 데 반해, 8년쯤 지난 지금은 전반적인 완성도가 확연히 높아졌다.
사실 이 쇼의 탄생은 옆집의 잘 나가는 프로그램을 흉내 낸 것이다. 그런데 “아이돌 중에도 노래 잘 하는 가수가 있구나”라는 인상을 심어 주고, 알리라는 뛰어난 여성 가수의 스타 탄생 무대가 되면서 프로그램의 독자적인 생존 능력이 확보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음악인들의 실력을 대중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창구가 되었다. 특정한 고득점 패턴이 식상해지면서, 익숙한 노래를 매주 새롭고 세련되게 변주해내는 능력이 높은 점수를 받는 경향이 생겨났다. 진정성을 가지고 음악에 헌신함으로써 폭과 깊이를 갖춘 가수들이 오래 버티게 된 것이다.
이런 경향이 뚜렷해지자 제작진도 자신감을 가지고 다양한 분야의 실력자들을 섭외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노래와 퍼포먼스를 매개로 하는 한국 대중문화의 거의 모든 장르를 맛보기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말하자면 시원찮은 B급으로 출발했으나, 제작진과 음악인들이 꾸준히 정성을 들인 끝에 해당 방송사의 간판 프로그램이자 한국 대중 문화의 저력을 전시하는 A급 쇼로 성장한 사례인 것이다.
문화란 이렇게 자연발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한 생명체처럼 예민한 것이라서 외부의 강한 힘이 컨트롤 하려 들면 금방 시들어 버린다.
문화의 이러한 속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힘이 독재 권력이다. 자기 뜻을 표현할 수 있는 근사한 결과가 빨리 나와야 한다는, 혹은 거슬리는 것들을 내 뜻에 맞게 손 봐야겠다 하는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문화는 빠르게 시들어 간다.
나는 이런 사실을 한국영화사를 공부하면서 관찰할 수 있었다.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은 한국 영화사 초기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 작품은 3.1 만세운동의 여파 속에서 탄생할 수 있었고, 일제의 검열이 더욱 혹심해지자 어떠한 영화 감독도 그와 같은 걸작을 두 번 다시 만들어낼 수 없었다.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4.19 민주 혁명의 뒤 끝에 나타났다. 곧바로 5.16 쿠데타가 발생하고 독재 권력이 이어지는 동안 한국 영화계는 온갖 뒤틀린 신경증으로 점철되어 있다. 80년대 들어 “서울의 봄”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장선우, 이장호, 배창호 등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가 비교적 안착한 90년대 들어서자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쉬리>가 블록 버스터 급 히트를 기록했고, 그 흐름이 지금까지도 무난히 유지되는 중이다.
오늘날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추게 되기까지 최소한 30년간 민주주의가 중단없이 지속되는 환경을 필요로 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나는 무엇이 좋은 정치인가를 판단할 때, 문화계에 얼마만큼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있는가를 하나의 기준으로 삼는다.
자율성이란 이를테면 무능한 출세주의자나 탐욕스런 자본가를 들끓게 만든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진짜배기가 훈련되고 살아남아 불후의 명작, 명인들이 탄생한다. 그들 중의 일부는 새롭고 건강한 시스템을 창조하고 이끌어 가는 주역으로 거듭난다.
힐러와 영성가들은 사람들이 자유롭기를 바란다. 그래서 어떤 정치가 들어서 있는지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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