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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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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로의 치유와 성장

나는 누구인가 2 - 친구에게

HaloKim 2019. 4. 3. 20:17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큐멘터리 두 편을 보았다

화가 세잔Paul Cezanne과 건축물 바우하우스Bauhaus


과거의 내가 고통을 뛰어넘는 방법을 배우려 뒤지고 다녔던

지식과 예술의 흔적, 미학적 거인들의 그림자를 예기치 않게 재회한 기분이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그 진부한 이야기들이

그 날의 나에게는 새롭고도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젊은 세잔은 당대 미술 세계의 지배적 패러다임 안에서 그것을 카피하려 애썼다

그런 다음 제멋대로 튀어나가 버렸다

말이 좋아 인상주의 예술 운동이지, 질서 밖으로 걸어나가 세상의 조롱을 받았다


고비마다 그는 엑상 프로방스라는 마을로 되돌아 갔다

거기서 생 빅토와르 산을 수십 번 그리고 그리며,

볼품없는 작은 산을 마치 숭고한 미학적 이상향이나 되는 듯이 탐색했다

 

아침에 화실로 건너가 저녁에 퇴근하기를 샐러리맨처럼 평생 반복하면서.


그는 고도의 근면성과 집요한 집중력을 가지고

길이 없는 길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갔다


말년에 그가 쌓아놓은 작품들로부터 젊은 미술가들이 영감을 얻어 갔고

근대 미술의 화려한 이름들이 불꽃처럼 가지를 뻗는 원점에 그가 놓여 있다


평론가들이 말한다

세잔은 미술의 본질과 형식을 현대화 시킨 사람이라고


예전의 나는 책을 읽고 오르세 미술관을 거닐면서 생각했다

세잔, 그는 얼마나 위대한 예술가인가


며칠 전 비행기 안에서는 가슴이 싸아했다

그는 성실히, 자신의 선택에 순명했구나



바우하우스는 어느 도시에나 지천으로 깔려 있을 법한 평범한 건축물이다

여기에 반전이 있다


현대의 어느 도시에서나 카피해서 쓸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창조했다는 뜻이므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 또한 당대의 지배적 패러다임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현실의 변화를 주시하고, 연구하고, 성실히 통합했다


그가 본 "현실"은 어쩌면 누추했을 것이다


비난하고 탄식하는 대신,

주어진 모든 미션을 종합적으로 수행할 하나의 공간을 상상하며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구성 원리를 창조해냈다


그리고 우아한 대리석과 벽돌이 지배하던 자리에, 

산업 도시가 쏟아내는 황량한 철강석과 유리를 불러 들였다


내 눈에 바우하우스는 아름답지 않다

유럽에 지천으로 남아 있는 중세 성당이나 한국의 궁궐 건축은 미학적으로 황홀하다


그런데 현대 도시의 곳곳에 납작 엎드린 채 깔려 있는 바우하우스의 후손들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집에 돌아와 TV를 보는데 가수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나왔다

80년대에 그 분들의 노래를 많이 듣고 따라 불렀다


TV 출연이 20년 만이라 떨린다 했고

옷차림도 시골 장터의 노부부가 서울 온다고 차려 입은 듯 소탈했다


그런데 나는 그 분들의 소박한 언어와 얼굴에 압도되었다

40년간 한 길을 걸으며 정진한 사람들의 겸손하고도 장대한 아우라.



나를 오래 알던 이들 중에 나를 떠나지 않은 몇몇이 있다

새롭게 알게 된 사람 중에 나를 깊이 들여다 보는 이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친구라고 생각한다


친구들이 나를 보는 눈빛은 어딘가 다르다

상념과 슬픔, 기쁨과 격려가 뒤섞인...


그들의 눈빛에 답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과거에 내가 헤어날 길 없는 고통에 답을 찾고 길을 묻느라 

책 속에서, 카세트 테이프 속에서 조우했던 예술가들


그들이 한꺼번에 되돌아와 나에게 답을 했다


나는 그 답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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