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함이라는 명예가 무너질 때, 치유의 전 과정에서 가장 깊은 동요가 일어납니다.
저 자신을 힐링하는 동안 발견했던 뜻밖의 복병이었어요.
나에게 이런 특징이 있구나 여기고 지나갔는데, 여러 사람들의 치유 작업에 깊숙이 개입하다보니
이 현상이 에고의 본질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치유의 핵심이라는 뜻이지요.
성장기에 벗어나기 힘든 어려움, 특히 자신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악조건이 있을 때
그것에 대한 탈출구 혹은 보완 수단으로서 명예로운 어떤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명예가 되려면
- 일단 동기가 선해야 하고
- 세상이 그것을 가치있다고 인정해줌으로써
- 나에게 어떤 보상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야 합니다.
이것은 좋은 일입니다.
사회에 필요한 일이고, 어떤 악조건에서도 이런 노력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따른 결과물이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
훌륭한 인격, 주위 사람들의 인정과 존중, 선한 영향력, 사회적 지위와 약간의 돈 등.
여기까지는 좋은데, 당사자의 에고 안에서 교묘한 작용이 일어납니다.
바로 흑백 논리로 전환하는 겁니다.
그 이유는 명예에 대한 "보상"의 메카니즘이 보통의 세속적 가치가 실현되는 방식과는 좀 다르기 때문입니다.
- 나를 고통에 빠뜨린, 내가 경멸하는 주변 사람들과는 다른 방향을 선택합니다. 즉 착함, 희생, 공적 가치, 성실, 헌신, 좋은 두뇌, 지성 등에 투자합니다.
- 반면에 나는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멀리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돈, 도덕적 타락을 통한 이익 추구, 타인을 노골적으로 지배하는 권력 등.
일종의 차별화 전략이죠.
지성, 착함, 영성, 예술, 공익, 정의 등 추상적 가치를 통해 자신을 차별화하고,
그렇게 되지 않을 때 불안하거나 화가 납니다.
생존 불안이고,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런데 생존 불안과 인정 투쟁이 선악 이분법으로 확장됩니다.
내가 추구한 가치는 선하다 vs. 다른 가치는 허접하다,
한발 더 나아가, 나는 선하다 vs. 다른 사람은 나쁘다로 연결되고,
급기야 배우자, 직장 관계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분별합니다.
이원성에 매몰된 나머지, 그 자체가 삶의 방식으로 굳어지는 것이지요.
무엇이 되었든 남들보다 우위에 있음을 확인하려 하고,
그것만 확인되면 자신이 가치있다고 여길 수 있는 것,
바로 에고의 기본 속성입니다.
명품을 끝없이 찾아 두르고 다니면서 귀족 행세하는 심리와 다를 바가 없어요.
이런 태도는 현실을 바꾸기는 커녕, 끝없는 불화를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됩니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절대적인 무책임으로 연결됩니다.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없거나, 있더라도 조금만 있다고 믿기 때문에,
현실을 바꿀 책임 또한 내가 아닌 타인에게 있다고 믿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착한 나"라는 프레임으로 사는 에고는 자신을 악하거나 허접한 세상에서 끊임없이 고통받는 희생자, 순교자로 만듭니다.
물론 어떤 것들을 희생하고 사는 건 맞습니다.
그렇지만 이 또한 내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내줄 것인가를 선택한 하나의 전략이지요.
나의 조건에서 가장 유리한 생존 전략이고 차별화 전략입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자기 삶을 변화시킬 주체가 될 책임도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이원성 의식duality consciousness, 즉 선악 이분법이 나 자신에게 재앙을 불러 일으키는 이유입니다.
치유가 깊어지면 바로 이 이원성을 다루어야 할 순간이 옵니다.
무언가 억울하고 황당한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여기서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이후 과정을 결정적으로 다르게 만들어줍니다.
모든 명분, 이유, 근거 찾기를 멈추고
타인에 대한 판단과 분별, 낙인 찍기를 멈추고
세상 탓 멈추고
내 안의 에고 메카니즘, 즉 선악 이데올로기를 들여다보는 데 주력할 시기입니다.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자신이 애써 쌓아올린 정체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예요.
끝없는 치유와 성장이란 끝없는 정체성 변경을 수반합니다.
정체성 변화는 정체성 위기로 느껴지겠지요.
치유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보는 이유입니다.
해내고 나면 결과는 매우 달콤합니다.
자신이 이루었던 선과 자질들은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되돌아옵니다.
훨씬 더 조화로운 방식으로.
사진 :
크고 아름다운 나무들과 사소하고 시시한 풀들이 함께 어울려 있도록 허용하기.
런던의 세인트 제임스 공원이 도심 한 가운데서도 많은 생명체를 품는 아름다운 공간이 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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