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참패한 것은 정치사회적 트렌드를 놓쳤기 때문이다.
보수정당이 어렵다고 보는 이유를 작년에 페북에 썼는데 단순히 민주당 편들자고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는 본능적으로 트렌드에 민감하다.
강물에 떠내려가는 배를 보고 "어, 배 떠내려간다"고 말한 것에 가깝다.
닻줄이 풀려 배가 급물살에 올라탔는데 하구의 주막에서 부르던 노래를 부르며 집이 흔들린다고 고래고래 나무라는 느낌을 받았다.
반면 민주당 쪽 인사들이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말하는 것을 보면 영리한 여우 같았다.
아, 이거 다음 총선에 답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그 때의 느낌을 적어놓았는데 찾아보니 날짜가 2018년 7월 13일이다.
범민주/진보 진영의 의석을 220석으로 예상하고 표를 그려 두었다.
노회찬 의원이 살아있었으면 정의당이 교섭단체로 진입할 절호의 기회였을텐데, 심상정이 방향타를 거칠게 잡는 바람에 15석 정도는 잃어버린 셈이다.
야당의 위성정당이 19석을 추가하리라는 것을 그 때는 알 수 없었으니, 이 변수들을 감안하면 얼추 맞춘 셈이다.
내가 세상 흐름을 잘 따라가고 있구나, 안심이 된다.
힐러로서 트렌드와 메가 트렌드를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보수 진영에서 "왜 참패했는가" "재건의 시나리오는 무엇인가"에 대한 분석들이 나오지만 핵심을 짚는 보수 인사는 아직 보지 못했고, 김세연 의원의 코멘트가 가장 인상적이다.
기대가 되는 보수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앞으로도 정치 지형의 변화를 유심히 살펴볼 예정이나, 일단 떠오르는 단상이 몇 가지 있다.
태영호씨가 강남에서 당선된 일이 일단 새롭다.
나는 이것이 문재인 정부에 유리하게 작용하리라고 본다.
북한의 고위 인사가 한국 의회에 진입하는 것을 보수 야당과 강남 사람들이 허용했다는 것은 한국인들의 집단적 방어기제를 스스로 허물어뜨린 사건이다.
아이러니다.
북한이랑 어찌어찌 잘 해서 함께 잘 살아보자고 말하고 싶은 민주당과 진보 시민들도 감히 넘보지 못했던 역사적
금기를 보수 야당이 먼저 넘었다.
문재인 정부가 남은 임기동안 열성적으로 추진하게 될 남북간 공조와 교류를 반대할 심리적 명분을 약화시킨 것이다.
물론 태영호씨는 북한체제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경고하는 일선에 서겠지만, 문제는 그것이 새롭지 않다는 데 있다.
북한 체제의 문제점은 한국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가 다 안다.
몰라서 평화 공조를 주장하는 시국이 아닌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야당의 시스템과 혜안이 건재해야 하고, 그 목소리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태영호씨의 개인적 목표의식 만으로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더구나 태영호씨의 탈북 사건에는 개인적인 이유가 큰 것으로 알려져있다.
조만간 북한의 여성 아나운서가 TV에 나와 그의 비리 목록을 나열하며 찰지게 욕하는 장면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태영호씨는 조작이고 음해라고 설명하겠지만, 어차피 공격이나 수비나 증거가 없다.
시민들은 그것을 조롱할 것이다.
지금 벌써 강남 아파트 이름을 "인민이 편한 세상" "푸르디오" 등으로 바꾸며 새터민 주택을 끼워넣으라는 풍자가시작된 것처럼.
두번째 단상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끼친 영향력이다.
진보 정부가 유능할 수 있다는 실감, 국뽕적 평가가 아니라 온 세계가 절박한 현실에서 떠들어주고 있다는 것은 정치 트렌드를 결정적으로 바꿀 것이다.
그러니 어떤 것도 그 자체로는 좋고 나쁨의 의미가 정해져 있지 않다.
바이러스마저도.
마지막으로 영남, 특히 대구-경북의 정치적 미래에 관한 예감이다.
충청권이 자민련의 아성으로 남았다가 정치적으로 다원화되고 민주당이 약진하기 시작한 것처럼, 이 지역도 스스로 고립되어간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흐름은 되돌릴 수가 없다.
보수 진영을 뒷받침하는 세대의 인구 구성이 매년 120만명 가량 줄어든다고 한다.
5년이면 6백 만명, 10년이면 천2백만 명이다.
그 공백을 메꿔갈 미래의 노년층은 현재의 586세대, 즉 정치적 민주화를 주도한 세대다.
대선을 치를 때마다 탄탄한 보수 표가 5백만, 천만씩 자연감소 한다는 뜻이다.
민주당에서 차기 20년 장기집권 하겠다는 "설레발"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민주당이 밀레니얼 세대의 정치 세력이 될 수 있는가, 보수가 빠른 속도로 쇄신하고 재건하는가 등의 큰 변수가 있지만, 자연의 힘은 보수당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또한 그 지역 진보 시민들의 정치 의식은 다른 지역과 다른 각별한 방식으로 길러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때가 되면 농축된 힘이 수면 위로 솟구칠 것이다.
이 흐름이 유지된다는 전제 하에, 나의 예상은 민주당 내부에서 온건과 급진으로 분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쪽이다.
이번 총선은 이해찬이라는 노련한 정치 거목이 장악하고 일사불란하게 치루었지만 그 다음 세대는 백화쟁명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번 조국 대전에서 단초가 드러났듯이, 민주당 자체의 분화가 가속화 할 것이다.
시민들 말대로 민주당 우파가 온건 보수, 민주당 좌파가 온건 진보로 도열하고, 새로운 정치 세력이 진보를 형성하는 그림이 떠오른다.
정의당이 그 기회를 놓친 것이 다소 안타깝지만, 이 또한 나 개인적으로는 좋은 일이다.
낡은 패러다임의 진보가 아닌, 뉴 밀레니얼 세대의 진보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친환경, 지속가능한 번영, 치유적 영성, 인류애, 보편 복지, 국제 공존,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 등 내가 사랑하는 가치들의 싹이 틀 것이다.
뱀다리>
심지어 조선일보도 배 밖으로 나와 술 깨고 강물 쳐다봄^^;
'나, 그대,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PPP - Politics for Peace and Prosperity (0) | 2020.05.06 |
---|---|
<소설 2천년의 여행> 팀을 모시고자 합니다 (0) | 2020.04.29 |
신념의 힘 (0) | 2020.04.14 |
사이비 예방 수칙 (0) | 2020.04.10 |
미국이 왜 코로나 바이러스에 취약한가 (0) | 2020.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