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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로의 치유와 성장

사는 이유

HaloKim 2020. 5. 18. 14:21

나는 흔히 말하는 사람 사는 일들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무언가 부지런히 하고 끊임없이 소통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어떤 인생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 그 사연을 한스러워 하지도, 뭔가 젠 체 하지도 않는다.

잘난 것도 못난 것도, 기쁨도 슬픔도, 고통과 환희조차도 그저 그렇다.

 

실은 삶이라고 규정된 모든 내용과 형식들의 의미가 희미하다.

그렇다고 죽음을 꿈꾸거나 해탈 코스프레를 하는 것도 흥미롭지 않다.

 

그러니 질문한다.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이 물질 세계 너머에, 혹은 똑똑한 인류가 다 안다는 듯이 자신만만해 하는 지평 너머에 무언가 더 큰 진실이 있다는 것을 감 잡았다.

그 이름을 무엇이라 부르든, 이 세계를 아우르며 넘어서 있는 거대한 무언가something greater.

 

나는 그것을 안다고도 할 수 없고 모른다고도 할 수 없다.

나 사는 데 필요하고 힘이 될 만큼은 알지만, 안다고 설치기에는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수준인가.

 

거대한 무언가는 어쩌면 예수나 부처가 이미  말씀하신 대로 우리 안에 있다.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있다omnipresent는 것을 받아들이면, 역설적으로 의미가 없어진다.

 

어디에나 있는 것을 나만 발견했다고 떠든다면, 바보 도 터지는 소리가 될테고

안에 있는 것을 찾아야한다고 헤맨다면, 그냥 바보다.

 

이것은 존재론의 궁지다.

신성도 의미가 없고, 삶도 의미가 없다면, 대체 왜 사는가?

 

내가 찾은 답은, 제 멋대로 살기 위해서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는 말은 무의미하다.

그런 건 그냥 패턴이다.

 

패턴이란 예민하게 알아듣고 숙고하고 참조할 일이지,

나의 선택을 좌지우지 하도록 둘 성격의 것이 아니다.

 

제 "멋"이란 진-선-미에 대한 사회적 규정을 떠나서, 내가 좋아하는 대로 선택한다는 뜻이다.

 

나의 멋은 이런 것이다 :

 

거대한 무언가가 실존하는 현실existential reality임을 받아들인다.

물질 세계는 환영이다. 실체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실상이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환영적 현실illusory reality이라 부른다.

 

나는 실존하는 현실과 환영적 현실 사이의 접점에서 제 멋대로 경험하겠다.

그 경험적 현실experiential reality을 통해서 나의 진-선-미를 탐구하고 실현하겠다.

 

현실적인 동시에 망상적이다.

그래서 뭐So 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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