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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대, 세상

기독교 이론의 한탕주의

HaloKim 2020. 6. 8. 04:13

나에게 영성은 가장 온전한 자기 긍정이자 현실을 힘있게 수용하는 방법이다.

내 영성의 뿌리는 예수와 에세네 공동체의 것이며, 불교를 비롯한 다양한 영적 자산을 사랑하고 나의 것으로 함양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꽤 오랫동안 꺼림직했다.

내 몫인 부분도 있지만, 주류 기독교 자체가 장애 요인이기도 하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치유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분명 무언가 있다. 그래서 문제"라며 회개하러 새벽기도 나가는 모습은 말문이 막힌다.

 

이는 보수적인 기독교의 논리 모순과 목사 개개인의 편협함 때문이다.

그 분들이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예수는 위대한 치유가였고 이방인을 분별하지 않았다.

 

영혼이 지구라는 "유일" 행성에 단 한번 와서 살다가 천국행-지옥행으로 나뉘어 영원히 위치가 고정된다는 생각은 얼마나 유아적인가.

이 애잔한 원시적 발상이야말로 신/창조주에 대한 가장 큰 오독이자 불명예다.

 

중층적이며 장대하고 입체적인 존재론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모습을 가장 의아해 할 사람은 아마도 예수 자신일 것이다.

 

예수는 신성의 개념을 매우 풍부하게 설명했고, 그것을 인식하고 통합하는 여러 가지 방식에 대해 긍정했다.

또한 예수와 에세네 사람들은 영혼이 지구상에 여러 번 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니 죄의 개념도 달라진다.

각자의 선택으로 경험하는 창조의 부산물product 혹은 이정표를 놓친다to miss the mark 정도의 뜻으로 설명했다.

 

아람어Aramaic 성서에 따르면 예수는 신을 아버지/어머니로 칭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지만, 땅에서와 같이 하늘에서도 이루어진다as above so below, as below so above고 했다.

 

이런 식의 무수한 차이들은 굳이 예수 당대의 에네세 자료를 공부하지 않더라도 기존의 성서 안에서조차 그 흔적과 근거들이 발견된다.

 

어쩌다가 그토록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신학이 예수의 이름으로 주장되었을까.

 

기독교인 스스로 이 실마리를 풀지 않는 한 깨어있는 현대인과 진지한 영성가들이 무신론, 인문학, 불교, 과학, 최면, 심리학, 치유, 명상, 요가 등 그들이 꺼림직하게 여기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길을 찾는 시대적 흐름을 막지 못할 것이다.

 

ps.

내 면전에서 이단, 지옥, 마귀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정한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우리가 같은 공간에 있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나와 당신들의 공간이 모두 평화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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