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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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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대, 세상

나는, 당신은 행복한가?

HaloKim 2020. 6. 13. 06:08

몇 년 전 20대 클라이언트가 도전적인 어조로 물었다.

"선생님은 행복하세요? 나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의 말은 듣고 싶지 않아요."

 

처음 받아보는 질문이었는데 의표를 찌르는구나 싶어서 당황하고 멈칫하자

청년이 도리어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격렬한 고통과 의문의 시기를 건너던 청년은 그 후로도 종종 찾아오거나 말을 걸었다.

한참을 뜸하더니 어느날 문득 와서 "행복하다"는 소식을 전하고 "가볼께요" 하고 사라졌다.

 

최근에 다시 찾아와서 자신의 비밀스런 사정을 털어놓더니 "제가 이상한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신나서 한참 자기 이야기를 하던 그 친구가 다시 물었다.

"선생님 행복하세요?"

 

이번에는 머뭇거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대답할께. 이전의 나로 절대 돌아가지 않아."

 

어제는 우리 힐러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그녀와 나는 격렬한 대화로 점철된 세션을 다섯 시간동안 했다.

 

요약하면 이런 식이다.

 

A : (어떤 대화)

H : 너 지금 나 데리고 장난하냐?!

 

A : (목소리를 부르르 떨며) 그 부분은 정확히 언니가 잘못 알아들은 거예요.

H :  아, 그래? 미안.

 

A : 억울하고 숨이 막혀요. 더이상 뭘 어떻게 하죠? 모든 게 언니와 관련되어 있어요. 부당해요.

H : 난 내가 정당하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A : 그러니까 속 터지죠.

H : 난 속이 안 터져. 그러니까 내 문제가 아닌 거고, 심사숙고 해보고 아니면 그만 둬.

 

A : 한다고요!!! 하려니까 문제죠.

H : (관점과 고집에 대한 격렬한 지적질) 넌 내 인생을 보완해주고 싶으냐?

 

A : 그랬던 것 같아요. 

H : 무슨 인생 설계를 그 따위로 해? 여기에 그런 사람이 설 자리는 좁아. 판을 짜는 법을 배우고 자기 색깔의 삶을 펼쳐야지. 

 

A : 그런 시기는 끝났네요. 이별인 거죠.

H : 멜로 드라마 계속 찍을래? 

나에 대한 너의 감정은 단순하지 않아. 그것도 인정해라. 신파조로 과장하지 말고.

왜냐? 내가 나의 선생님들에 대해 온갖 감정을 가지고 배워왔고 지금도 그렇거든.

너의 학생들도 너에 대해서 그렇지 않겠니?

 

넌 나를 신뢰하지? 내가 가려는 길에 기꺼이 동행할 건데,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너무 힘이 드니까, 조금만 천천히, 내 손을 잡고 가주면 안돼요? 라고 말하고 싶지?

 

A : (눈물)

H : 우리는 미지의 길을 가는 중이야. 이게 정답인지, 최선인지 모르는 채로.

더구나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삶에 개입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자임하면서. 

 

네가 직접 해보니 그게 얼마나 두렵고 힘든 지에 대해서 토로하는 거잖아?

어떤 한 측면만을 치유한다고 해서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달달하고 친절한 뉴에이지 스타일만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한계가 있고.

얄팍하게 좋아져서 공회전 하는 모습에 계속 돈 받는 것도 부담되고.

 

아킬레스 건까지 돌파하는 인생을 건 정면 승부가 필요하다는 게 겁이 나는 거잖아요, 우아하신 그대?

나는 그대에게 치열한 경험까지 가르치는 것이고요, 고객님.

나한테 달달한 소리만 들으면서 계속 돈 내고 싶으세요, 호갱님?

 

우리에게 역할 분담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나까지 공감과 지지, 달달 스타일만 시도때도 없이 쓰면 이 치유 공동체에 미래가 있겠어요, 착하신 고객님?

 

A : 고객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H : 왜요? 저는 장사하는 건데요, 고객님?

 

A : 언니는 좋은 감정, 인간적인 감정들이 그립지 않으세요?

H : 내가 비인간적이냐? 지금 내가 너한테 쏟고 있는 시간들은 뭔데?

 

A : 행복하냐고요.

H : 응. 과거로 결코 돌아가지 않아. 지금의 내가 평화로워. 평화가 곧 기쁨이야.

 

과거의 나는 비극적인 고통을 껴안고 노력했어. 그 시기에 함양된 자질이 있지. 너는 그것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알아봤지? 

그 모습을 사랑하고 그 모습을 나누고 싶지?

 

난 지금도 그 자질을 사용하는 중이야.

다만 과거에 쓰지 않던 자질들, 억눌려 있던 힘도 불러일으켜서 동시에 사용하는 거고.

 

사람들이 나에게 묻고 있어. 당신 삶이 비루하고 별 볼일 없는 것 안다. 본인 입으로 다 떠벌이니까.

그런데 어떻게 평화로운가? 어떻게 자신을 긍정하며, 남을 도우며, 그것으로 벌어먹고 사는가?

 

그 방법이 치유이고,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을 나는 신성이라 부르고, 이런 류의 여정이 치유적 영성이라고 나는 생각해.

 

치유적 영성은 흔히 생각하는 수행자의 삶과 달라.

 

갠지스 강 위의 하얀 사원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갠지스 강물에 몸을 담그고 씻고 빨래하고 똥 싸고 그 물에 밥 짓고 기도하는 삶이야.

 

스스로 착하다 믿고 희생자 코스프레 하며, 지 똑똑한 줄 아니까 겸손 코스프레 하며,

세련된 취향이나 교양 맛이 뭔지 아니까 세상 사람들 우습게 보고,

이런 인간들이 철 드는 방법이야.

 

지구에 또 와서 구르고 있다는 게 그 증거잖아?

뭘 잘난 척을 해.

 

난 그런 짓을 이제 그만 할 거야.

 

A : 그러니까요.

H : 이 길을 가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을 거야.

 

기러기처럼 서로 떼를 이루어 나란히 날아가는 방법도 있고,

황새 몇 마리가 소나무 사이를 우아하게 날아오르며 가끔씩 논두렁에 내려와 개구리를 잡아 한 다리씩 나눠 먹을 수도 있고.

 

넌 너의 선택을 하렴.

 

나는 기러기처럼 날아가고 싶어.

북풍한설 헤치고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수도 있을 거야.

그때 기러기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손 잡고 날아가면 어떻게 되겠니?

 

난 딱 한 가지만 약속할께.

힘차게 열심히 날아가는 것.

No more, no less.

 

넌 내 앞 모습과 얼굴을 보려 하지 마.

손을 잡으려 하지도 말고.

 

그러다가는 몇 마리가 동반 추락할 거야.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짓이잖아?

 

A : 알겠어요. 오늘은 두 세션 한 것으로 처리하세요.

H : 착한 척 하지 마. 이눔의 가시나.

A : 착한 척 아니거든요! 장사 하라면서요. 난 계산 깔끔하게 하는 거예요.

H :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고객님.

A : 으이그.

 

Ps.

어제는 새벽부터 자정까지 강도 높은 스케줄이 이어졌다.

집에 와서 떡실신 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 행복했다.

어제 만난 이들의 선한 열정, 밤 늦게까지 호통치며 때려잡은 힐러의 눈물 어린 예쁜 얼굴이 떠올랐다.

꺼림직한 마음이 없었다.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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