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영성-치유-봉사-진보 쪽 사람들이 돈을 많이 가지면 안된다는 "무소유주의"에 동의도 신뢰도 하지 않지만,
원래의 무소유 개념에는 뜻이 있으리라 가끔씩 숙고해 본다.
물질 세계가 허상이라면 있음만큼이나 없음도 허상일 터.
없음에 정신적, 영적 의미를 부여 하는 것은 이원론의 또 다른 극단이겠다.
무언가를 소유하는가, 소유하지 않는가를 한 존재의 정신 세계와 진실성의 근거로 바라본다면, 핵심이 물질 그 자체가 된다.
소유론도 무소유론도 기반이 똑같아지는 것이니, 양 쪽 다 인간의 탐욕이나 생존 불안을 다루는 데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만약 성인들이 무소유를 말했다면 무엇을 경계하라고 했던 것일까?
물질에 대한 착attachment을 갖지 말라는 해석이 내게는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린다.
착은 심리적 현상이다.
나와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뜻한다.
관점의 문제로 전환하면 물질과 나 사이에 거리두기가 가능해진다.
물질의 절대적 지위가 해체되는 것이다.
나와 물질 사이의 빈 공간, 심리적 공간에 많은 것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성취와 소유와 과시에 매달려도 보고,
타인에 눈을 돌려 공감하고 연민하며 양보도 하고,
소소한 소유를 가지고 애틋하게 가꿀 수도 있고,
남들과 다른 기준의 럭셔리와 검소의 밸런스를 즐길 수도 있고,
없을 때 기죽지 않고 담대하게 존엄하게 일어설 수도 있고,
보다 큰 가치와 공동체에 눈돌려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데 헌신할 수도 있고...
태도와 관점의 자유를 나는 무소유의 원 뜻으로 본다.
어느 한 방향으로 끌고 다니거나 끌려 다니지 않음으로써 소유라는 환상에 매이지 않는 힘.
각자의 환경, 공동체와 시대의 상황 등에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개인의 선택과 자존 능력.
ps.
나는 어떤가?
잘 모르겠다.
최근에 차를 바꿨다.
리스 차량이긴 하지만 카톡 몇 통으로 차 쇼핑을 마쳤다.
물건 사러 한 번 나갔다 왔을 뿐, 집에 있느라 새 차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까먹었다.
이런 태도가 어떤 심리 상태에서 기인하는 지 아직은 해석이 안 된다.
게으르고 무관심한 건가, 착이 줄어든 건가.
이러나 저러나 내가 편하니 불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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