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읽을까 걱정

<열자>를 벌써 반이나 읽어버렸다.

최근 몇 년의 내 의문들에 대한 답이 들어있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넌지시 일러주는데, 숙고하고 음미하며 체화해야지 하는 생각도 책을 여는 순간  날아가버린다.

일상의 실천行 보다는 재미에 정신줄이 팔려 그렇다.

 

노자, 장자, 열자는 비유와 논리의 대가들이다.

말로 할 수 없는 궁극의 무엇을 언어와 인지를 경유하여 전달할 수 있는 최상급의 영성가들.

 

열자가 "예전에 내 스승 노자께서"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가슴과 눈시울이 울컥했다.

2천 5백 년의 시공간 너머에 계신 나의 스승을 그리워하는 듯이.

인생에서 지혜와 사랑을 갖춘 양육자, 안내자를 찾아 떠돌아다녀본 사람이라면 이 마음이 통하지 않을까.

 

열자는 또한 옳고 그름, 선악을 내려놓으려 3년 동안 죽도록 하고 나니 스승이 흘낏 한번 쳐다보았고,

5년이 지나 옳고 그름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니 스승이 한번 미소지었으며,

7년, 9년 후에는... 하며 그 영성이 발전하는 단계를 밝혀놓았다.

 

나는 이 스승들이 계시는 끄트머리에 앉아 아직 눈길 한번 받지 못하겠구나.

치유 한답시고 옳으니 그르니 머리끄댕이 잡고 싸움질이나 하는 처지라.

 

글자에 치여죽을 정도로 책을 파며 살 길을 찾던 시기, 그래서 뭘 좀 안다고 생각하던 나는, 노자의 표현을 빌면  "병이 깊은데 병인 줄 모르는 병병病病" 혹은 열자가 적나라하게 지적한 대로 "천박한淺" 상태였다.

 

이제 좀 천천히, 덜 읽고 덜 분별하며, 삶을 통해 깨쳐야겠다.

이 또한 열자가 말했다.

 

외부 세상에 물이 따라 흐르듯이, 거울이 비추듯이, 소리가 반향하듯이 하라고. 

그것이 도道라고.

외부와의 접점에서 자신이 드러난다고.

외부의 것들은 도/근원에서 멀어질 수 있으나, 자신은 도에서 멀어질 일이 없다고.

 

<열자>의 번역자이신 김학주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연암서가 출판).

이 분의 해설에 전부 그대로 동의할 필요는 없겠으나, 원문 해석의 깊이와 넓이가 굉장하시다.

한학이든 영문이든 어떤 언어 자체뿐만 아니라 문화적 배경과 전거까지 소상한 번역을 통해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