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고통이 사라지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늘을 날 듯한 기쁨과 환희?
평화다.
평평한 조화로움, 텅 빔.
힘 낭비 없이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는 상태.
하얀 종이를 앞에 둔 아이처럼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상상하고
필요한 것들 배우고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에 뿌리내리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고통에 익숙한 에고는 이것을 견디지 못한다.
강렬한 감각의 자극을 통해 삶을 경험했기 때문에,
무엇이 되었든 그만큼의 역치가 주어져야 살아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렇지 않으면 우선 심심하고,
내가 뭘 하고 있나 의심하고,
뭔가 안이하게 일을 벌여서 빠른 속도로 실패를 맛보고,
남한테 훈수 두거나 도와줄 기회를 찾으며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고,
그것이 좌절할 때마다 (반드시 좌절하게 되어 있다) 나는 자격이 없고, 할 수 없고, 치유 같은 것 다 소용없고 등등의 익숙한 돌림노래를 시작한다.
기분 좋을 때는 내가 부처이고 예수이고 빛의 마스터이고
가라앉을 때는 우울증과 무기력에 휩싸인다.
심지어 몸이 살아있는 한 에고는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정당화 한다.
그래서 에고의 구조를 변경시키는 것이 치유와 영성의 본질이라고까지 말하는 것이다.
이 작업 없이는 늘 삶이 격렬하게 출렁인다.
새롭게 발굴된 옛 문서들을 보면 예수의 가르침이 보다 풍부하게 와 닿는다.
"어려분이 땅을 알면 하늘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 모든 것이 있으니, 신의 왕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말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불성이 어디 있는가에 대한 부처님의 입장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내가 출렁이면 땅이 출렁이고 하늘도 출렁인다.
나는 요즘의 새로운 평화가 낯설다.
하려는 일은 태산인데 이렇게 긴장을 안해도 되나?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는데 두려움을 안 느끼는 건 문제가 있나?
부자가 아닌데 생존 불안을 안 느끼는 건 내가 잘못될 징조인가?
이런 짓을 하지 않도록 자각에 자각을, 성실에 성실을 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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