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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대, 세상

어느 은사님

HaloKim 2019. 9. 4. 14:25

작은 소식 하나가 나의 과거 기억을 강렬하게 불러 일으켰다.


조민 양을 가르친 은사가 방송에서 하신 이야기다.


"기성 세대로서 미안했다. 짧은 시간 지도했지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나쁘지 않다. 너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나쁘다."

- 서울대 환경대학원 당시 학과장


나는 서른 살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수사를 받았다.

그 때 체력적으로 마지막 한계를 느낀 순간이 있었다.


건강이 원래 좋지 않아서 한여름이었는데도 수의 안에 털옷을 받쳐 입었고,

밥을 넘기지 못했다. 예민해서 그랬다.


수사 기간도 유독 길었다.

국가보안법의 구속 기간이 원래 두 배인데다 나는 특별히 더 오래 조사받았다.

태도 때문이었다.

"내가 한 일에 대해서는 전부 이야기 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결국 "조직 사수를 위해 단식 투쟁하는 최고 거물급"이라는 혐의를 받았다.


얼마 지나자 "다른 쪽에서 다 불었다. 너만 웃기고 불리하게 됐다"는 비아냥을 들었는데
나는 약간의 짜증을 섞어 대꾸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가는 상관 없는 일이고요, 나는 그냥 말하지 않을 겁니다."

열받은 형사가 책상을 뒤집어 엎으며 때리려고 했다. 

순간적으로 허리와 얼굴을 치켜세우고 상대방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른다.

갑작스레 돌변한 모습에 놀랐는지 조사자도 움찔 하며 주저앉았다.


검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 된 후에도 나만 계속 불려나갔다.

아침에 나갔다가 밤 10시에 구치소 바닥에 널부러지기를 반복했다.

할 말은 수없이 반복했고, 하고 싶지 않은 말은 여전히 할 생각이 없었다.


어느 날 검찰청 조사실의 통유리로 눈을 돌렸다.

해가 지고 있었다.


모든 체력이 소진되었음을 알았다. 

밥은 먹고 있었지만 건강과 상황의 문제였다.

수갑에 밧줄까지 그대로인 채 몸이 옆으로 천천히 기울기 시작했다.


서류 더미에 코를 박고 있던 사무장이 편지를 툭 던졌다.

"당신 지도교수가 보내온 탄원서인데 워낙 특별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한두 장 쯤 되었을까. 아쉽게도 단 하나의 문장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편지에 흐르던 정서만이 떠오른다.


탄원서에 당연히 있을 법한 내용은 들어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선생님과 내가 나누었던 일상의 교감을 담담하게 적어내려 가셨다.


다 읽고 다시 창 밖을 바라보는데 몸에 힘이 생겨났다.

나는 다시 정자세로 앉아 늦은 밤까지 조사 받았다.

먹지 않았는데도 기운이 도는구나, 생각했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한 번도 맞거나 고문당하지 않았다.

내가 한 일이 별거 아니거나, 때리면 죽을 거라 염려했거나, 시절이 나아진 덕분인가.


어쨌든 희한하게도 모든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한 단계 한 단계가 어렵고 종종 험악한 분위기도 펼쳐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옆에서 보는 사람이나 조사와 감시를 하던 사람들이 음으로 양으로 응원하고 도와주었다.


심지어 재판이 시작하자마자 보석으로 풀려나왔다.

국가보안법 사상 첫 보석이라고 했다.

판사가 나를 "특별히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불가능에 가까운 기이한 축복이 쏟아졌던 시기라고 말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내가 누구인지를 선명히 규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외롭고 두려울지라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선택하고 유지하면,

언젠가는 다른 사람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과거와 지금의 어느 젊은 여성에게 지지대를 꽂아주신 두 분의 은사님께 드리는 감사의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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