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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대, 세상

그래서, 보수 진영이 승리할까?

HaloKim 2019. 11. 30. 01:02
산업으로서의 치유 활동을 본격적으로 설계하기 위해, 올 한해 동안 나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시간을 꽤 할애했다.
거시적, 미시적으로 감을 다듬을 필요성 때문이다.

그림이 대략 잡힌 지금, 뜻밖의 지점에서 마음이 아프다.
출발점은 윤석열 vs. 조국이었다.

현대의 사법제도 아래서 이런 식의 수사 과정을 나는 본 적이 없다. 한 개인의 "죄"를 다룬다는 명목으로 아내와 동생, 조카를 구속시키고 노부모와 자식 전부, 직장과 주변 등 그와 연이 닿은 모든 이들을 몰아 부치면서 민정수석실, 청와대까지 그물코를 엮어가는 중이다.

이는 옛날식 사화 당쟁과 훨씬 더 비슷하다.
검찰 수뇌부가 권력 지형에 개입하고 집단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골적인 정치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조국이라는 개인은 3족을 멸하는 멸문지화의 칼 밑에 머리가 놓여 있다.

이제 윤석열과 조국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역사적 개인이 되었다.

이는 최근 십여 년간 한국 사회가 변해가고 있는 상황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 핵심은 정치경제적으로 철옹성이던 보수의 아성이 흔들리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권력을 두고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던 보수와 진보의 역관계가 박근혜 탄핵을 계기로 판이 바뀌어버렸다.

보수 카르텔은 노무현의 권력을 손쉽게 무력화시켰고 퇴임 후의 영향력까지 제거할 수 있었지만,
박근혜를 내세웠던 뼈아픈 자충수 탓에 친노 세력을 필두로 진보 정치가 부활하고 말았다.

문재인은 국가 권력을 운영해본 경험을 가지고 대통령이 되었을 뿐 아니라, 개인적 자질 면에서 보수의 미덕으로 여겨졌던 "나라의 어른" 풍모를 풍긴다. 또한 그의 후광 아래 스타급 진보 인사들이 미래 권력의 자산으로 성장하는 형국이었다.

결정적으로 문 대통령은 통일 한국과 극동 아시아 경제권, 신남방 경제정책 등 먹거리에 관한 비전으로 국내외의 여론을 현란하게 설득 중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이러한 지점들, 즉 권력을 되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더해 경제적 독점 체제가 와해될 가능성, "경제는 보수"라는 정치 슬로건이 무력화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위기이자 악몽으로 느껴질 것이다.

역사적으로 권력 카르텔이 이런 판세를 뒤집기 위해 사용하는 노하우가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암살이다. 구심점이 되는 인물을 원 포인트로 제거함으로써 흐름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애용되는 방법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정신나간 일개 개인의 손에 죽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전광훈 목사가 "문재인을 총살해야 한다. 이런 자를 살려두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것은 이런 멘탈리티를 반영한다. 그러나 "요즘 세상이니까 살려두고 이렇게 말로 하는 것"이라 하니, 그도 세상이 변한 것을 알고는 있다는 뜻이다.

둘째는 계엄령이다. 80년대 한국에서 통했던 방법이고 촛불 시위 때 이 방안을 검토했다는 증거들이 있다.

세번째는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방법으로, 단기간에 모든 권력 시스템을 총 동원하여 특정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전력질주 하는 것이다.

이들은 정치 지형에서 파죽지세의 성과를 올리는 중이다. 많은 진보 정치인들이 치명상을 입었고, 진보 성향의 장관 후보들이 나가 떨어졌으며, 순진하게(?) 버티던 조국은 일벌백계의 상징이 되어 요즘 장관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의 씨가 말랐다.

또한 전 언론이 일사불란 하게 참전하고 있다.
언론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크고 작은 모든 언론사에 거액의 광고료를 뿌리거나 주지 않음으로써 목구멍을 포도청으로 만들어버리는 힘.
나는 언론사에서 글밥을 먹었던 사람으로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이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

윤석열의 검찰은 이 싸움의 선봉을 자처하고 있다.
적벽대전을 치루고 자신이 천하삼분지계의 주역이 되기를 꿈꾸는 걸까?

그래서, 한국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나는 보수 진영의 승리가 어렵겠다고 예상한다.

물론 나의 개인적 성향이 착오bias를 불러왔을 가능성을 인정한다.
원래부터 진보 진영이 잘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꼭 그 이유만은 아니다.
나는 정치적으로 진보를 지지하지만, 실제로는 복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취향은 세련된 미학을 좋아하기 때문에, 내 처지와 상관없이 품격 있는 보수의 귀족주의를 동경한다.
또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 중에 내적 성장과 자기 혁신을 멈추고 한때의 진보 타이틀로 연명하는 비루함에 치를 떤다.

무엇보다 보수의 장점과 진보의 장점 둘 다 사회에 필요하다고 믿는다.
새는 두 날개로 날고, 두 다리로 땅에 설 수 있어야 한다.
실은 보수와 진보의 정권이 오락가락 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보수 진영의 승리가 어렵겠다고 느끼는 이유는 세 가지다.

1.
그들의 전략이 낡고 후지다.
지금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의 전략은 과거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던 시절의 야당 전략을 송두리째 카피하고 있다.

현대 한국은 문화적, 정치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세련되고 역동적인 나라이고,
경제적인 능력도 내 세대가 생각하던 한국이 더이상 아니다.
이것이 지난 십여 년의 변화를 관찰한 나의 핵심 소감이다.

보수 진영의 전략이 전체적으로 생뚱맞은 느낌을 주는 이유다.
시절에 맞지 않다는 뜻이다.
비유하자면, 초등학교 시절에 통하던 싸움의 기술이 고등학생에게 먹히겠는가?

특히 지난 2년 반 동안 자유한국당은 박근혜를 탄핵시켰던 전략을 흉내내어 문재인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올인 하고 있다.
이런 전략이 먹힐 거라고 기대하는 심리가 있다는 것은 "문재인이 남자 박근혜"라고 말하는 거물급 야당 정치인의 입을 통해서도 재확인 된다.

그래서 진부하다.
이 기시감 때문에 진보 진영의 시민들이 초장부터 일제히 경계심을 품게 되었고, 중도층이 받는 충격도 찻잔 속 태풍 수준에 멈춘다.
윤석열 검찰은 조국과 민정수석실을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처럼 엮어갈 모양인데, 그 파괴력이 그들의 기대만큼 크지 않을 것이다.

2.
보수 진영의 전략이 시민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있다.

민심이 천심이라 했지, 민의가 천의라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지, 머리를 움직여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박근혜가 탄핵되고 정권이 넘어가버린 결정적인 이유도 세월호를 목격한 국민들의 마음이 다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도 야당과 보수 진영은 사람들이 마음을 줄 만하면 그들 스스로 걷어차버린다.

예컨대 조국 사태는 중도층 시민들에게 "선을 넘어 비정하다"는 인상을 주기 시작했다.
로마 시대 검투사라면 상대가 죽을 때까지 찔러야 관중이 환호성을 지르겠지만,
세련된 정치 감각과 문화적 취향을 가진 한국의 시민들에게 언더독underdog이 가족과 함께 죽을 때까지 두드려 맞는 모습이 환영을 받겠는가?

더구나 총선 때까지 이 사안을 끌고 갈 생각이라면 시점이 잘못 택일 되었다.
이렇게 계산 착오가 난 이유는 검찰이 목표를 두 개로 정했기 때문이다.
자기 이익도 지키고 정치에도 영향을 미치자니 계산이 뒤섞인 것이다.

최근 "민식이법"을 가지고 협상을 하려 든 것도 비슷한 반응을 초래하고 있다.
스쿨존 안에서 교통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안전 규칙을 만들어서 다른 어린이라도 지키자고 눈물로 호소하는데, 거기다 대고 선거법 포기하면 들어주고 안 그러면 필리버스터 하겠다는 발상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

왜 이렇게 악수를 두는가?
보수 진영 안에 더이상 시대를 선도하는 머리가 없거나, 그만큼 궁지에 몰려서 전략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급류에 떠내려 가는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손을 내밀 수 없다.

보수 진영이 박근혜 탄핵 전략을 카피하며 비장한 민주주의 투사를 자처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 박근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상처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상처줄 뿐, 이끌지 못한다.

3.
치유가로서의 비전 때문이다.

힐링이 작금의 한국에 메가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치유적 인문학, 치유적 영성, 치유적 복지가 활성화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치유가와 영성가들은 근본이 휴머니즘이다.
대중이 치유를 대거 수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휴머니즘으로 열망한다는 뜻이다.

보수와 진보는 대중 의식의 두 경향성이다.
정치인들은 그 물결 위에 올라타 배를 띄우고 있을 뿐이다.

지금 보수의 민낯과 진보의 한계가 모조리 까발려지고,
국가 권력의 실상과 허상, 언론의 생리, 한일 관계의 실체, 국제적 역학까지 대중들이 생생히 목격하고 깨어나는 지금, 한국 대중 의식은 어느 방향을 선택할까?

보수가 승리하든 진보가 승리하든 대중 의식의 선택인 것이고,
한국의 주인인 한국 대중이 어떤 선택을 하든 옳고 그름을 시비할 수 없다.
그냥 받아들일 뿐이다.

여론 조사의 추이를 보면, 보수:진보:중도가 3:4:3 정도의 비율로 수렴된다.
보수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최대 35% 정도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진보 진영을 지지할 시민 또한 비슷한 수치이거나 조금 많다.

진보 진영이 이 정도로 성장해서 자리를 굳히고 있다는 것은, 시절의 흐름이다.
보수 입장에서는 싫든 좋든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된 것이다.

중도층 시민은 자기한테 더 유리하거나 자기 취향에 맞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한국 시민은 매우 세련되고 역동적인 정치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보수와 진보 중에 어느 쪽이 더 이들의 취향에 맞는 아젠다를 내고 있는가?

이 부분이 향후 권력의 향배를 결정할 것이다.
보수 진영이 승리하려면 문화적, 정치적으로 세련되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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