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교수는 드라마 같은 것을 통해 상상한 외과의사의 전형적인 이미지다.
그의 신념은 흔하게 보고 듣지만, 그 신념대로 고스란히 살고 있는 사람은 충격적이다.
그래서 <대화의 희열>이라는 인터뷰 프로그램에 등장한 그를 유심히 보았었다.
그에게서 내가 받은 인상들은 이렇다.
자기 세계의 외부에 대해서는 재수없을 정도로 무관심하고 차갑다.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신념보다 성향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내면이 외부에 의해 훼손당하고 그것이 이유가 되어 자신이 훼절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향이다.
그는 의사 아니라 다른 무엇을 했어도 저런 모습으로 살겠다.
그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주의자다.
자신이 일궈온 터전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음을 잘 알고, 그렇게 된다면 별 말 없이 받아들일 수도 있다.
최선을 다했기에 아마 비교적 빨리 잊어버릴 것이다.
그 또한 외부와의 길항을 견디고 자신을 보존하기 위한 심리적, 정서적 공간을 마련한다.
그 수단이 음악을 듣는 것이다.
그는 강하거나 차가워서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예민한 사람이라 그렇게 살게 된 것이다.
일방적인 나의 해석일 수 있지만,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본능적으로 끌린다.
주변의 잔소리나 사회적 감시 없이 믿고 내버려둬도 되는, 세상 돌아가는 데 제일 필요한 부류일 것이다.
내가 접한 그의 최근 뉴스는 이재명 경기지사를 위해 법원에 탄원서를 냈다는 소식이다.
응급 헬기 한 대 사주고 그것이 이착륙 하는 데 유리하도록 행정규칙 하나 마련해준 것이 그에게는 자기답지 않은 일을 할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새벽 커피 끓이는 시간에 문득 그를 떠올린 이유는 생노병사에 대한 나의 화두 때문이다.
공부하고 명상할 때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중대한 전환을 유도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가족을 내려놓지 않고는 내 뒤를 따를 수 없다"는 취지의 성경 구절,
"가족의 생노병사를 시시비비 하지 말라. 네가 그렇게 하면 고통의 윤회가 끝나지 않는다"는 부처님의 메시지였다.
모두 자기만의 해석과 경험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끊임없이 숙고하게 되고 그 가르침의 의미가 중층적으로 거듭 다가오는 부분이다.
이국종 교수는 일상이 생노병사를 다루는 입장일 것이다.
그것도 끔찍한 부상으로 죽음이 오락가락 하는 사람들의.
부상이 발생한 후 한 시간 안에 자신의 공간으로 데려와 최상의 외과적 조치를 하기 위해 병적으로 노력하고 세상과 싸우고 세상에 애원하는 사람이지만,
환자가 살까 죽을까를 내내 두려워한다면 그는 견디지 못하고 삶의 방식을 포기할 것이다.
아마 멀찍이 떨어져 단지 바라보는 시선으로 순간순간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인간의 생노병사에 가장 연연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놓여나 있는 수행자일 것 같다.
치유 공부를 시작했을 때 이런 표현을 접한 적이 있다.
"예수가 사랑하는 제자는 기독교에도 있고 다른 종교에도 있고 무신론자 중에도 있다.
그들은 의사이기도 하고 수학자이기도 하다.
예수를 왜 기독교를 만들고 기독교를 대변하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그 때의 충격으로 나는 실제 예수가 어떤 존재였는지에 관심을 갖고 진심을 다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에세네 공동체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그 이후로 모든 분별의 틀을 넘어서는 법을 열심히 연습하였다.
사람의 다면성과 모순과 혼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좋아하고, 싫은 모습 싫어할 나의 권리를 긍정하고,
남이 나에게 그렇게 하는 것도 인정하고,
좋은 면을 주목하며 친구가 되고, 싫은 모습을 두고 잘 싸우는 법도 연습하고.
에전보다 내 삶은 훨씬 자연스럽게 살아 숨쉰다.
살기가 편하다.
숙고하고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다.
세상에 거울이 되는 스승이 많다.
실은 모두에게서 배울 수 있다.
모두가 빛과 그림자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고, 반면교사도 스승은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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