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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대, 세상

트로트 싱어의 얼굴로 나타난 힐러들

HaloKim 2019. 12. 20. 16:41

스타 탄생의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

21살인데 현인 선생을 성악적으로 재해석 한 듯한 목소리다.



올해는 조명섭, 송가인 등 정통 트로트 보컬리스트들이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둘은 트로트 팬들이 향수와 존경을 담아 호명하는 옛 가수들의 창법을 계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어떤 정서까지 고스란히 불러 들인다.

조명섭은 외롭고 어려운 삶 자체도 그 세대와 유사성이 있다.
음악 취향과 말투, 외모는 물론이고 좋아하는 시인도 백석이라니
"개화기에서 타임 슬립을 했느냐"는 농담이 나올 만 하다.

송가인의 어머니는 전라도 무당이신데 당집을 팔아 딸의 노래 살림을 보탰고, 
본인은 십 년간 비녀(?) 만들기를 하며 노래 생활을 유지했다던가?

나는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강력한 느낌들을 환기받는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서 있는 사람,
찔레꽃 피는 고향 마을의 포실하던 살림살이를 회고하는 이,
꿈인 듯 아스라한 연애의 기억처럼 남은 몰락한 왕조의 달밤,
모두가 정신없고 힘에 겨운 부산역 기차 안에 조용히 앉아 이별의 애조를 삭이는 화자.

내 세대의 경험이 아니라서 미묘함까지 감지하지는 못했던 어떤 인간들의 이야기가 애틋하게, 심지어 격조있게 와 닿았다.

식민지와 전쟁의 직격탄에 일상이 갈기갈기 찢긴 이들이 스스로를 애도하며 치유하고 삶을 살게 했던 한 시대의 고전음악.
트로트 장르를 내가 아는 모든 음악 장르만큼이나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겠다.

트로트 전성기를 향유했던 세대의 마음을 더 살뜰히 공감하면서 뜻밖의 소득(?)도 생겼다.

나는 자유한국당 - 태극기부대로 대변되는 정치적 극우파의 신념이 고통스럽다.
소멸해가는 낡은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신념의 저변에 있는 어떤 상처, 기억, 경험, 정서는 이해가 간다.
모든 상처가 다 그런 식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표현될 수도 있다.

좋고 싫은 감각이 좀 완화되려나?

조명섭이 인터뷰에서 "모두가 서로 돕고 조화를 이루는 세상, 하나가 되고 통일이 되는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너무나 헤맑고 순수한 얼굴로 옛 트로트를 부르며 저리 말할 때, 그 어떤 정치적 목소리보다 더 깊이 낡은 신념들 사이로 스며들 것이라 예상한다.

송가인이 경상도 소도시에서 진한 전라도 사투리로 "송가인이어라~"하고 애교를 부릴 때
지역 감정의 장막 속으로 어여쁘게 뚫고 들어 가리라.

두 사람은 젊은이의 얼굴로 나타난 치유가다.
트로트라는 의표를 찌르는 힐링의 도구를 가지고, 깊은 치유를 필요로 하는 세대에게 공감과 메시지를 실어나른다.

스마트폰 게임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보라가 휘날리는" 하며 흥얼거렸다.

내 노래에서는 트로트의 맛이 전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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