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다각도의 천착과 경험을 통해서,
나는 이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존재하는가?
나는 "각자의 의식 안에 존재한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이것은 묘한 말이다.
만고에 다 지어낸 생각이라는 말과 한끗 차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은 이것도 맞는 말이다.
의식이란 내 안의 우주 혹은 내 안의 신과 동의어다.
무한한 의식의 세계 안에서 어느 방향으로 포커스 하느냐에 따라,
광대한 진리의 바다에서 자신의 진리를 형성해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얼마든지 다른 결론과 진리를 조합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선대, 선각의 지혜나 종교와 학문, 과학으로부터 수많은 근거를 가져온다 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정체성에 부합하는 것들을 취하는 것일 뿐,
그것에 모순되는 또 다른 수많은 진리의 편린들은 내 안에서 스스로 기각하기 마련이다.
확신하는 진리가 서로 상충되더라도 각자의 진리가 엄연히 자립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자기가 믿는 대로 얼마든지 경험하면서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지구가 마음에 든다.
자유 의지를 가진 창조주들의 놀이터이자 학교!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게 재미있다.
땅의 세계를 천착하면서 무르익은 전문가들의 견해는 지혜의 본령에 맞닿아 있다.
하늘의 세계를 천착한 이들이 전달하는 과학 혹은 오컬트적(으로 들리는) 지혜도 사랑한다.
그 경계를 아우르는 사람이 나에게는 가장 매력적이다.
순전히 개인 취향이다.
어떨 때는 내가 직접 그러한 배움에 접속한다.
때로는 교회에서, 어떨 때는 성모상 앞에서, 종종 불상 앞에서, 대개는 내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내가 머리로 지어낸 것일 수도, 어떤 신성한 존재들이 나에게 알려주었을 수도 있다.
간혹 "무당이냐" "뭘 한다고 하는 데 넌 바른 법을 모른다" "이단이다"라는 소리도 듣는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가 어디라고 내 깜냥에 결론을 내려봐야, 수없는 역사적 논쟁의 강물에 한 숟가락 보태는 것일 뿐이다.
그저 나에게 유익하면 받아들인다.
내가 얻고자 했던 통찰력, 알고자 했던 지혜라는 것이 중요하다.
내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말은 출처와 권위가 어떠하다 한들 그런가 보다 한다.
최근에 가장 충격적인 배움은 관음보살로부터 주어졌다.
나는 마음의 대화에 흐뭇하여 질문을 거듭했다.
그 중의 하나가 "다차원이란 무엇인가요?"였다.
아마 제법 안다고 생각했고 더 근사한 깨우침이 계속 주어질 거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답변 대신 "다차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세 번 연속 같은 대답을 듣고서 비로소 알았다.
아, 나에게 진실한 것은 "다차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그 자체로구나.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다 누군가에게서 주워듣고 어딘가에서 읽고 상상한 것이로구나.
충격적인 깨우침이었다.
그날 밤 내 오라장 전체가 확 쪼개지며 안에서 에너지의 불꽃이 일어났다.
내가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동시에, 몰라도 내 진리의 길을 가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내 안에 진실한 질문들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예정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만고에 내 경험이라고, 당신에게 도움이 되면 참조하시고 아니면 제껴두시라고.
당신 또한 자신만의 진리의 길로 나아가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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