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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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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문답

음모론과 영성

HaloKim 2020. 1. 3. 22:34

음모론을 건강한 문제 제기로 바꾸어보자면, 지구 역사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을 중대하게 수정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일 겁니다.


인류의 진화와 문명사의 연대기, 지구 차원의 정치경제 시스템, 행성 외부와의 관계 등에 관한 지식 결정적인 결함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단지 학문이 덜 발달해서라기보다는 의도적인 정보 통제가 작용하고 있고요. 


가장 심각한 부작용은 인간의 본질과 정체성에 대한 인식제약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의 실존이 극도의 긴장anxiety, 생존 불안, 두려움, 분노, 외로움, 슬픔에 매몰되어 있는 것을 당연시 합니다.


이런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전파하는 주요 장치가 주류 학계, 미디어, 정치, 종교 등이죠.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정보의 왜곡에 큰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연구와 지식이 흘러나오는 곳도 이들 분야지요.

기존의 틀에 안주하지 않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자기 내면의 양식에 따라 연구하고 정보를 소통시키려 고군분투 하는 사람들 덕분입니다.


영성가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영성의 원리에 충실하면 됩니다.


세상에 어둠이 있고 그것이 조직화되고 강력한 힘이라고 치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둠을 향해 달려나가 싸울 것인가? 

어둠을 어디서 찾으며 어떤 방법으로 물리치는가?


어둠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인가?

내 안에 무엇을 끌어들일 것인가?


내 삶의 어둠이 세상 탓인가?

천국/불성이 자신 안에 있다는 말은 어찌된 것인가?


바깥의 어둠에 집중하면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선악 이분법이 작동하기 때문이지요.


이원성 의식duality consciousness이야말로 인간 에고가 사로잡혀 있는 가장 치명적인 덫이죠.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과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호도하기 때문입니다.

각종 논리와 감정의 드라마를 끌고 와서 그 책임을 회피하는 구실이 선악 이분법에 기초한 희생자 의식입니다.


구약성경은 여러 낡은 관념에도 불구하고 영원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에덴 동산(지구)에서 무엇이든 경험해도 좋다, 다만 선악과만 따먹지 말라.


아뿔사! 이 덫에 빠진 인간이 자기 안의 가장 높은 의식/본성highest nature과의 연결을 잃어버립니다.

신God이라 불리우는 목소리가 묻습니다. "너는 어디에 있는가?"


멋진 농담이 있더군요.

아담은 이브 탓을 했고, 이브는 뱀 탓을 해서 쫓겨난 거라고.


나의 의식, 나의 삶은 렙틸리언(파충류)이나 일루미나티가 아니라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영성가들이 잃어버린 나를 찾는다며 나의 밖으로 나간 뒤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여행자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를 회복하는 인생 재활의 첫 걸음은 내 안의 낡은 요소, 특히 감정체의 부조화를 치유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깨달음의 지름길이기도 해요.
깨달음enlightenment의 영어식 표현 빛이 들어찬 상태, 가벼워진 상태를 뜻하지요.

현실에 뿌리내린 영성가는 지구 전체의 치유와 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합니다.
빛의 기둥들이 땅에 굳건히 서서 자신의 빛을 밝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어둠의 장막을 옅게 하고 구멍을 내고 마침내 걷어내는 방법이지요.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 도열한 빛의 기둥들light pillars이 지구 차원의 시스템the planetary grid system을 형성한 채 행성의 주인으로서 도움을 청할 때, 비로소 신/다차원의 마스터들/불보살들/성령/다른 행성과 은하의 마스터들도 대규모로 협력할 수 있습니다.
자유 의지를 제1의 원리로 하는 행성/우주가 진화하는 방식이지요.

그래서 영성의 궁극은 자기 현실에 뿌리내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인구의 2%가 되면 극적인 전환이 올 거라고 하지요.

그런 날이 올까요?
된다면 언제 이루어지며, 그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저에게는 이렇든 저렇든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라는 나의 정체성을 나 스스로 규정하려는 노력의 일부일 뿐입니다. 

나는 스스로를 치유가/영성가라고 정의내렸고, 
나의 치유와 영성을 책임집니다.

이 일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고, 오로지 나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환경이나 건강, 재산, 학벌, 사회적 지위가 어떻고 직업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나는 치유가/영성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