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교수가 아주대 병원장에게 쌍욕을 듣고 기죽은 목소리로 "예"하는 음성 파일이 공개 되었다.
한국 응급의료계의 영웅이 처한 비참한 현실에 모두가 가슴이 철렁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병원장을 심하게 욕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문제의 근본 원인이 특정 개인이나 사립대 병원 차원의 책임이겠는가.
"환자는 돈 낸 만큼이 아니라 아픈 만큼 치료받아야 한다."
이국종 교수의 이 말에 내 가슴이 찡했다.
그가 흔히 알려진 위대한 의료 봉사자들과 다른 특이한 점은,
자신의 신념을 최고의 수준으로 구현해주기 위해 대학병원을 무대로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온 삶을 던져 벌이는 투쟁은 지금 한국 사회가 겪는 격동의 본질과 맥을 같이 한다.
미국의 보험료와 치료비는 욕 튀어나올 만큼 비싸고 돈 낸 만큼 잘 해준다.
사회주의적 아이디어를 접목한 나라는 모두가 평등하게 느릿느릿 치료 받는다고 한다.
한국이 이상적인 제3의 길을 갈 수 있을까?
그 전제로서 두 가지가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 사회 전체의 부와 능력이 전 국민에게 양질의 기초 생활을 보장할 수준이 되는가.
- 국가 경영의 가치관이 인본주의를 우선에 놓도록 다수 시민이 동의하는가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그라운드 제로"의 조건에서 눈부시게 노력하고 성장했던 한국 사람들이
21세기의 부패 스캔들을 통해 한국이 갖고 있는 부의 규모와 능력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나눌 몫이 부족하니 더 많이 벌어서 나누자, 라는 말 대신
낙후한 시스템을 개혁하면 모두에게 보다 인간적인 삶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꿈을 진심으로 꾸는 것 같다.
최근 십여 년간 시민들이 보여준 치열하고 성숙하고 지속적인 움직임의 저변에는 이 질문과 방향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한 사회가 참으로 낭만적인 꿈을 꾸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 꿈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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