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길이 하나의 뜻으로 엮어진다
공부가 편안하며 기쁘다.
어떤 책을 펼쳐도, 어떤 선생님을 만나도, 수십 번 본 글도, 처음 보는 것도
그 뜻이 그윽하여 하나로 합한다.
용어가 다르고 관념이 다른 것은 언어가 본디 상징이고 은유라 그렇다.
그것 자체를 음미하는 즐거움도 있고,
그 장치 너머의 뜻 -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감지하는 묘미가 본질의 맛이다.
누구나 긴장 속에 살아왔고 경계심을 가지고 발을 담군다.
최대한 신중히, 필요하다면 몇 년이라도 왔다 갔다 하며 안전하게 살피라고 나는 권유한다.
그 중 누군가는 발을 담그고
그 중 누군가는 지속하며
그 중 누군가는 치열하게 나아간다.
시간과 함께 우리는 동행이 된다.
동행자들과 나는 그다지 친하지도 않고, 일상을 챙겨주거나 하지 않는다.
특별한 관계라고 확신할 만한 흔한 단서가 없다
화광동진和光同塵, 빛을 조화로이 하며 먼지와 함께 한다.
자기 자리에서 화광동진 하다가 가끔 얼굴 보면 그 뿐이다.
과거의 나도 그렇고 사람들은 특별히 딱 붙어 있는, 혹은 일심동체로 각별히 챙겨주는 관계를 원한다.
결국엔 서로가 너무 다르다고, 우리가 진실로 함께 하는지 회의하며 외로움을 느낀다.
동행자들은 서로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관계로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다.
그러나 누군가가 진실로 나와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와 기쁨이 깊어진다.
Ps.
화광동진.
나는 여전히 노자의 광팬이다.
30대의 공자가 노자를 찾아갔다는 설은 유명하다.
공자가 하소연 한 것은, 세상의 온갖 공부를 통달하고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진정시키고자 정치인들을 찾아다녔으나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요지다.
노자의 반응은 여러 가지로 전해지나 내가 무릎을 친 표현은 "다행이네요"였다.
당신이 한 공부라는 것은 죽은 자의 말에 불과하다,
살아 있는 생명의 욕망을 이해하고 그들의 속성에서 출발한 도가 아니면 무익하다, 라는 취지다.
공자가 "이상한 노인"이라고 몸을 떨며 도망갔다는 해설도 본 적 있으나
대체로는 큰 충격을 받고 칩거하며 깨우쳤다는 쪽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장면일 것으로 여겨지는 기록은 이러하다.
노자가 새도, 물고기도, 짐승도 자기만의 생명의 도가 있다고 한 부분을 받아 공자가 말하기를
"새와 물고기, 짐승이 있다는 것은 나도 안다. 헤엄치는 것들은 낚시로 잡고 달리는 것은 그물 쳐서 잡고, 날아다니는 것은 주살로 잡으면 되는데, 용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오늘 노자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 실체를 모르겠다. 용과 같아 전혀 잡히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젊은 공자는 오리무중인 노인의 말을 거울 삼아 깨우침을 향해 전진했을 것이라 믿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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