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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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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사례

치유적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욕설

HaloKim 2020. 4. 30. 21:24

내가 힐러로서 노련해질수록 달라지는 점 중의 하나는 욕을 한다는 것이다.

"이 놈의 가시나"는 애칭이고, 인상을 차갑게 굳히며 "뭐 이 년아?"가 진짜다.


내 삶이 욕에 익숙한 경우가 아니거니와, 힐러로서 당사자의 면전에 대고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었다.

그래서 맨 처음 욕을 하게 된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 클라이언트는 내가 따뜻한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공감하고 지지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느꼈고 "살면서 처음 하는 경험"이라며 누누이 감동하곤 했다.  


"헤일로 언니는 똑똑하고 훌륭하니까" 지적이고 온화한 언어로 윤리적인 태도를 유지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마침내 안심을 하게 된 내면아이inner child가 폭주하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어느 선에서 멈추고 상대의 경계선을 존중해야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경험과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 날의 특별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설명을 다 했음에도 막무가내다.

불교 심리학에서 말하는 6도 윤회의 축생도나 아귀도는 그런 감정과 태도에 함몰된 인간 에고의 풍경일 것이다.


나는 숨이 막혔다. 

선택지는 둘 뿐이었다.

받은 돈을 저 얼굴에 집어던지거나, 저 에고를 돌파하거나.


그녀가 저렇게 하는 이유는 내가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 폭력적인 간절함에 답하기로 마음 먹었다.


과연 저 에고/내면 아이가 평생토록 생생하게 경험한 살아있는 언어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그녀는 지적이고 선하고 영적이고 헌신적인 태도를 오래도록 유지했다.

이 또한 실제 모습의 일부이다.


나는 차가운 이성과 분명하게 자각된 의식 속에서 얼굴 표정과 자세를 바꿨다.

그리고 소리 질렀다.

"야 이 미친 년아아아아!"

그녀의 눈동자가 요동쳤고 사고 체계가 일시 정지하는 "멘붕"이 왔다.


그 모습을 관찰하면서, 틈을 주지 않고 앞에 했던 말의 핵심을 거친 언어로 바꿔 다다다다 이어붙였다.

그녀의 가정과 일터의 언어였을 것이다.

끔찍하게 싫어서 영성으로, 치유로 내달렸을.


치성하던 그녀의 에고가 사그러들었다.


진흙탕 씨름은 그 후로도 6개월쯤 여러 형태로 반복되었다.

지금 그녀의 치유 여정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내가 알지 못한다.


그녀는 누구도 해내지 못한 방식으로 나를 가르쳤다. 

'점잖고 지적인 나'라는 자아상을 깨부수는 성장통이 여러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속에서 2년 가량 지속되었다.

나는 성모님 앞에서 부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었고 예수님에게 질질 끌려 머리와 허리를 납작 숙였다. 


이제는 내 일이 옳다거나 내가 선하다는 전제 자체를 스스로 의심한다.

관세음, 세상의 소리를 그저 바라보시는 관음보살이 힐러로서 나의 이상형이다.


내가 하는 치유 작업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지도 않는다.

전적으로 클라이언트 본인의 자유 의지와 선택에 달려 있고 나는 순명surrender할 뿐임을 받아들인다.


자각 상태에서 나와 상대에게 최고최선의 유익이 무엇인가 절실히 묻고 기도한 뒤, 나를 완전히 내던진다.

언어는 종류를 구별하지 않고 그때그때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을 거리낌 없이 쓴다.

유려하고 치밀하기 위해 노력할 때도 있고, 비수를 예리하게 꽂을 때도 있고, 면전에서 실실 웃으며 약을 올릴 때도 있다.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


놀랍게도 클라이언트와 학생들은 충격과 고통 속에서 나의 진심에 반응했다.

자신들이 할 일을 정확히 알아차렸다.

비판하는 이에 대해서는 내가 인간 말종이라고, 토 달지 않고 머리 숙여 인정한다.


나는 힐러로서 점점 더 위력적으로 변했고, 점점 더 높은 수준의 클라이언트를 만나게 되었다.

요즘의 인연은 충분히 준비된 힐러/영성가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도 나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될까?

그러지 않으리라 예상하지만, 혹시 "또라이"가 있을까 싶어 내 경험을 기록해 둔다.


진지하게 치유작업을 하는 클라이언트는 대략 1~2년 이내에 치유의 성과가 가시화되고 내적인 확신이 생겨난다.

힐러에게 가장 어려운 도전이 시작되는 시기다.

진짜 난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킬레스 건을 대면하는 것이다.


아킬레스 건은 신화에서 상징하는 대로, 지속되는 고통과 약점의 근본 원인을 뜻한다.

흔히 운명/카르마/사주팔자라고 인식할 정도로 삶이 그렇게 굴러가게 만드는 핵심 원동력이다.


그러나 치유가의 관점으로 보자면 에고의 구조, 잠재 의식을 포함한 심리적 자아의 구조일 뿐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라는 지혜의 언어가 알려주듯이성장기 가족 내 경험을 통해 원형적인 틀이 형성된다는 점에서 내면 아이-내면 가족의 역동dynamics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내면 아이의 감정적 상태가 모든 외부 관계에 투사된다.

내 안의 어린 아이가 삶을 이끌어간다.

종교 안에 "어린 아이"라는 강력한 상징이 존재하는 이유다. 


에고의 구조를 이루는 요소는 흔하디 흔한 것들인 반면, 그 요소들을 본인의 경험과 결합하여 엮어내는 스토리텔링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 보편성과 개별성을 스스로 해명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전환할 수 있는 방법 즉 개념과 테크닉들을 알려주며, 반복 연습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 힐러/영성가의 역할이다.


이렇게 하면 누구나 바뀐다. 

그 다음부터는 스스로 길을 찾아나가고 내면의 신성과 연결하여 힘을 증폭시키는 단계로 접어든다.


이 뻔한 작업이 왜 어려운가 하면, 에고가 살아있는 의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에고는 평생을 통해 갈고 닦인 능숙한 생존 기술을 장착하고 변화에 저항한다.


에고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변화다.

자신이 소멸한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 고통의 원인만 없어지면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며 우는 모습을 흔히 보지만, 그리고 이것은 절실한 마음이지만, 더 깊은 진실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변화의 책임이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며 분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익숙한 고통을 선택하고 반복한다.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이 구조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선한 희생자 의식, 은밀하고 뿌리깊은 우월감, 타인에 대한 교묘한 컨트롤 욕구 등이 복잡하게 작동한다.


아킬레스건을 정직하게 직면하고 멈춤없이 작업할 수 있는지, 그 어떤 외부적인 것에도 핑계를 돌리거나 추상적인 진리로 도피하지 않고, 될 때까지 지속할 수 있는가.

이것이 치유적 영성의 본령이자 하일라이트다.


기라성 같은 영성가들의 내면에 평화가 뿌리내리지 않고 삶이 여전히 요동치며 붕붕 떠다니는 이유는 이 부분을 가벼이 여기기 때문이다.

머리와 말로 어떤 경지를 논하든지간에 심리적으로는 우울증 상태다.


그럴수록 진리는 추상화 되고 독선적이 된다. 

자신을 합리화 시켜야 에고가 고스란히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힘써 노력할 일은 내 안의 장애를 인식하고 내려놓는 것 뿐이다.

이것이 치유다.


나머지는 저절로 드러나고 연결된다.

이것이 영성이다.


치유적 영성, 노자가 말한 위무위無爲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