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환상이라고 말한다.
살아보니 그런 것 같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이 사실을 다 알고 있다.
대처하는 방법들이 다를 뿐이다.
가장 흔한 대처법은 환상의 한 요소를 골라 에너지와 의식을 집중하는 것이다.
대체로 사랑, 돈, 권력, 위치, 외모 등이고 일부는 추상적 가치를 추구하기도 한다.
그러면 대상에 힘이 실리고, 그것 자체에 힘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홀로 있을 때 불안하고 내부의 균열을 면치 못하며, 심할수록 타인의 인정을 구하는 욕구가 더 강해진다.
인정 욕구는 폭력이나 우회적 컨트롤로 변질된다.
지키려고, 키우려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악착을 부리는 이유는 그것이 허무한 환상임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좀더 견고한 것을 찾는다.
산전수전 겪으면서 세상에 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주로 그런 듯 하다.
나를 배신하지 않는 것 - 자연, 땅, 자신의 노동, 동물, 식물, 기술, 물건 등에 집중한다.
얼핏 단순한 사람처럼 보이고, 본인 스스로 모르는 척 무심한 얼굴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런데 자신이 집중하고 있는 것 -대상이든, 신념이든-이 건드려지면 강하게 반응한다.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화를 내기도 하고, 비난하거나 조롱으로 응수하기도 한다.
어쩌면 "나를 흔들지 마"라고 지레 방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이상 흔들려야 할 이유가 없다고.
그래서 아예 귀기울이는 공감 자체를 차단하는.
이들은 우직한 미덕이 있고, 역설적이지만 따뜻한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가는 길은 다르지만 너 또한 꼴통이로구나. 인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도인들은 환상을 정면 승부한다.
"깨쳤다" 말하고, 공하다, 자유롭다, 혹은 더 큰 신성한 세상이 있다고 자신의 경험들을 리포트 한다.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짐짓 집중하며 애지중지 하는 환상의 본질을 폭로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물론 진실한 리포트조차도 경험인 동시에 신념이다.
공하다는 경험과 신념,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경험과 신념.
진실과 뒤섞인 고집 - 그 자체가 불완전한 환상임을 뜻한다.
달라보이지만 모두가 같다.
어느 한 사람 예외없이 세상에 문제 많다고 소리친다.
환상 속에서 환상 아닌 것을 찾아야 하므로.
내가 보기에는 모두가 이 세상의 것이 환상에 불과하다고 음으로 양으로.알려주는 것일 뿐이다.
자기만의 방식과 경험을 통해.
나라고 달리 길은 없다.
내 자리를 찾아서 그 중의 한 가지 방법으로 사는 것이다.
한 가지만 피하면 된다.
내 앎이 정답이라고, 이것이 더 선하고 우월한 길이라고, 이것이 전부라고, 여기가 깨우침의 끝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그런 말들을 나도 믿지 않으니까.
세상에 선을 끼치려 하기 전에 민폐는 남기지 말아야겠다는 결심.
한 생을, 여러 생을 민폐로 살았으면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
나이가 50대 중반.
지천명知天命에 힘쓰라. 그러면 점차 이순耳順해 질 것이다.
옛 선배들의 말을 이렇게 해석해 본다.
하늘의 뜻을 안다 - 하늘의 뜻이 넓고 깊으니, 안다는 것은 동시에 제한성을 인식하는 것이요, 그러면 다 안다고 할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어떤 앎을 선택하고 나아갈 뿐이겠다.
이순 - 남들도 그러리라는 것을 나를 미루어 알고, 남의 말과 삶과 선택을 분별함 없이 순순히 듣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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