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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대, 세상

사랑의 불시착 - 정치적 메타포와 치유적 해석

HaloKim 2020. 7. 24. 21:12

1999년과 2000년에 개봉한 영화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가 김대중 시대의 남북관계에 대한 공기를 담고 있다면,

2020년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문재인 시대의 꿈에 대한 대중문화의 따뜻한 화답으로 읽힌다.

 

만약 나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대중예술 장르를 꼽으라고 한다면, 멜로 드라마다.

 

<사랑의 불시착>은 사랑스러운 "여시" 연기를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손예진과, 눈빛과 몸의 이미지로 멜로를 완성해낼 수 있는 현빈을 남과 북에 갈라 놓았다는 것만으로도 강렬한 정치적 드라마가 된다.

 

여기까지는 <쉬리>의 성취를 벗어나지 않는 반면, 이 드라마의 새로운 점이 몇 가지 있다.

 

북한의 심각한 사회 문제를 체제 전체의 선악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냥 남에도 북에도 못된 인간은 있기 마련이고, 그들을 만들어낸 환경의 야만이 있다고 구별시켜 준다.

 

북한 사회의 나쁜 점을 조철강(오만석)이라는 악역에 몰아준 덕분에, 그 사회의 보통 사람들을 따뜻하게 그려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뭔가 얻어먹을 궁리만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 대신 <응답하라> 시리즈의 분위기로 채우는 것이다.

물질적으로 덜 풍요롭지만 순박하고 정이 많아서 마치 우리 자신의 멀지 않은 과거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이 또한 불완전한 환상이다.

그러나 막연한 공포나 적대감보다는 가족멜로적인 환상이 세상에는 더 유익할 것이다.

 

나는 이 드라마에서 대중예술가들이 무의식적으로 펼치는 시대의 예언을 본다.

 

일본 극우파 정치인들의 의지와 달리, 남북한을 교대로 적대시 하면서 헌법 개정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이라도 벌이고 싶은 욕망이 자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지는 못하리라는 점이다.

 

<사랑의 불시착>이 일본에서 여전히 인기 1위라고 한다.

한국 드라마의 소비자가 주로 여성이었다면, 지금 코로나 팬데믹으로 집에 들어앉게 된 중년 남성들조차 마누라 따라서 보다가 팬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는 대중을 선동하기도 하지만, 긴 눈으로 보면 대중 의식을 크게 거스르거나 넘어서지는 못한다.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예언자적 목소리는 아시아를 향하고 있다.

상당수의 아시아 시청자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북한 사람들과 동일시 하면서 한국을 선망할 가능성이 있다.

 

그들에게 한국은 패션회사 대표 윤세리(손예진)처럼 미워할 수 없는 얄미움과 사람 미치게 만드는 매력과 풍요로움, 환상적이고 세련된 문화와 기술을 가진 비교적 선한 이웃으로 느껴질 지도 모른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한국 사람들은 "서구 선진국이 더이상 세계의 선도국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인가? 설마, 혹시, 우리가 그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인가?"라는 어리둥절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중이다.

 

치유가의 시선으로는 세 명의 주인공이 눈에 띄었다.

 

우선 리정혁(현빈). 

트라우마적인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의 트라우마로  전환된다.

 

그는 형을 유난히 따르고 좋아했는데 불의의 사고로 형이 죽고 그 원인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켰어야 했다"는 죄책감이 "나는 삶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자기 처벌이 된다.

 

이후의 삶은 무언가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트라우마의 순간에 붙박힌 채 삶의 기쁨과 풍요로움을 스스로 박탈시킨다.

그래서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자기 목숨을 던져서라도 지켜야 한다는 강박적 책임감, 구원자 의식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 드라마에서는 그것이 가슴 떨리는 멜로적 장치가 되지만, 현실의 치유에서는 생명력이 시들어가는 비통한 트라우마 증후군이다.

나는 이런 고통을 잘 안다. 내가 그랬으니까.

 

세리 엄마(방은진).

재벌 남편이 바람 피워서 데리고 들어온 핏덩이에게 형식적인 엄마 노릇을 하지만, 속으로는 아이를 결코 사랑하지도, 아이의 순수한 사랑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런 자신이 한심하니까 살고 싶은 마음도 없고, 급기야 정신줄이 나가서 아이를 바닷가에 버려둔다.

곧 돌아온다는 거짓말을 남기고.

 

남편에 대한 복수심이 사랑을 차단하고, 그 죄책감이 그녀 자신의 생명력을 시들게 한다.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극적인  캐릭터이다.

 

윤세리(손예진)

엄마에게 버려진 그 바닷가에 머물러 있다.

 

youtu.be/2TK0eL50EkA

 

바닷가의 아이/ 윤세리의 내면 아이는 사랑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도 믿지 못한다.

 

자존감이 있을 수 없고, 그 공허를 자존심으로 채운다.

똑똑하고 예쁘고 성공하고 돈 많고 매력있고 등등.

 

실제로 버림받고 학대받은 적이 있는 아이들의 가장 큰 상처는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서 엄마아빠가 그랬을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감정적으로 버려진 아이들도 물리적으로 버려진 아이들과 비슷한 증후군에 시달린다는 것을 나는 치유가의 경험을 통해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다.

 

"당신이 태어나줘서 고맙소. 있는 그대로 나에게는 소중하고. 비록 멀리 있더라도 언제나 당신을 응원하고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라오." 

이런 말은 리정혁의 달콤한 멜로적 대사일 뿐만 아니라, 트라우마에 갇혀있는 클라이언트에게 들려주는 치유가의 메시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