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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대, 세상

진실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 매혹/잔혹의 페르시아 vs 영웅/난동꾼 알렉산더

HaloKim 2020. 8. 9. 14:44

21세기의 위기는 우리에게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라고 강력히 요구한다.

"세계 문명의 초석을 놓은 그리스 vs. 야만의 제국 페르시아"라는 역사 인식의 패러다임을 전복시키는 연구가 하나의 예다.

 

과거의 역사를 달리 보면 현재와 미래의 나아갈 길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열린다.

 

youtu.be/eV30XIkDubo

관용, 평화, 풍요의 제국 페르시아

 

BC 550년 현재의 이란 지역에서 시작된 페르시아는  3개 대륙에 걸쳐 30개 이상의 민족을 아우르며 250년간 번성했다.

2,500년 전의 인류 역사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초강대국이었다.

 

그리스인들이 기록한 대로 "잔혹한 야만의 제국"이라며 잊혀졌던 페르시아는 20세기 고고학, 특히 페르세폴리스에서 발굴된 3만 여개의 점토판 기록에 영감을 받은 신세대 역사가들의 시선을 통해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따라가며 요약해 본다.

 

3:00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 유적지.

 

9:30 "태양 아래 가장 부유한 도시"를 이미지 그래픽으로 재현.

행사장으로 쓰인 건물은 현재 10개의 돌기둥이 남아 있는데, 당시에는 36개 기둥이 20미터 높이로 솟아 있었고 만 명을 동시에 수용했다.

 

12:00 "왕중의 왕" 다리우스의 궁전.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여성 역사학자는 이것을 "건축학의 교향곡"이라고 묘사.

 

14:00 제국 내의 전 지역에서 온 사절단이 입장하는 계단.

"심리적 통치술"이 드러난다 - 압도당한 뒤 점차 고양되어라. 마침내 왕의 이미지를 만나 엎드리라. 

 

20:00 이런 건축학적, 심리적 통치술은 권력을 행사하는 "인자한 방식benign way of execising power."

계단 벽에 부조되어 있는 사절단들은 손을 잡고 있기도 하고, 평화와 조화의 이미지로 묘사될 뿐 폭력적인 이미지가 전혀 없다.

 

강력한 제국empire을 이러한 방식으로 제시하는 이미지는 매우 독특하다.

실제로 왕에게 공경하고 세금만 잘 낸다면 각 민족과 인종의 언어, 문화, 종교 등을 모두 허용했다.

완벽한 정치적 관용.

 

25:00 이러한 정치 시스템은 전 제국에 걸친 도로 네트워크를 통해 구현되었다.

총 길이 4천 킬로미터로 지중해, 이집트, 인도를 페르시아의 중앙부로 연결.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 왈, "페르시아의 운송 통신 수단couirer보다 빠른 것은 없다."

말 갈아타는 일종의 우체국 시스템을 통해 가능.

 

관용, 평화, 부가 넘치는 왕국은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29:00 세계 최초의 왕궁 정원 "패러데이사"(세계의 정원이라는 뜻).

이 말은 오늘날 낙원을 뜻하는 파라다이스paradise의 기원이 되었다.

 

사막 위에서 아름다운 돌이 반짝이고 물이 흘러 넘치는 정원은 관개와 수로 시설을 통해 가능했다.

 

점토판에 이 정원의 상징성이 설명되어 있음.

수천 종의 나무, 식물, 과일은 제국의 전 지역에서 수입되었는데, 정원에서 차지하는 크기가 해당 지역의 규모를 그대로 드러내도록 배치.

 

32:30 본질적으로 유목민.

텐트 중심으로 거주하며 햇빛과 날씨에 따라 이동했다.

 

33:00 그리스 사람들은 이를 조롱했다.

"열기를 못 견디는 페르시아 남자들은 진짜 사나이가 아니다. 여자 같은 짓"이라고.

 

나의 단상.

 

사막의 날씨를 모르고, 타인의 삶의 양식을 존중할 줄 모르는, 전형적인 무지.

유목적인 삶namadic life이란 현대인의 삶의 양식이기도 하다.

 

34:30 텐트, 담요, 옷을 짜는 페르시아 여인들.

세련되고 화려한 색감은 오늘날에도 페르시아적 전통의 상징 요소로 남아 있다.

 

36:45 보라색은 왕의 색깔로 여겨졌다.

재현하기 어려운 고급 기술이었기 때문.

 

38:00  페르시아의 스타일은 전 세계에 카피되었다.

그리스, 로마는 말할 것도 없고 현대의 서구 사회에도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끼침.

건축, 섬유textile, 정원 등.

 

39:00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의 음식 문화에 매혹되었다.

헤로도투스, "페르시아 사람들은 술wine을 무척 좋아한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토하거나 오줌을 누면 안된다."

 

궁금증 - 그리스 사람들은 토하고 오줌 누면서 먹었나?

 

음주는 정치적 시스템으로 활용되었다 - 진실을 말하는 기회.

또한 공동체 구성원들이 전부 모여 같은 음식을 먹고 하나의 그룹으로 통합되는 사회적 기능을 지녔다.

 

40:30 그리스 사람들은 이를 "페르시아는 열등하다"는 근거로 사용했다.

"화려하고 여성적이고 여성화시킨다. 그래서 우리를 타락시킨다."

그리스 사람인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의 부패한 영향력을 끝장내겠다"고 선언한다.

 

42:00 알렉산더와 다리우스 3세의 군대가 맞붙는다.

BC 334년 오늘날 터키 지역에서 시작된 전투는 마케도니아의 기습적인 전투법이 승승장구 하는 결과를 낳았다.

BC 331년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심장부에 이르렀고, 다리우스 3세가 사망했다.

 

알렉산더는 페르세폴리스를 "가장 혐오스러운 도시"라고 불렀다.

 

44:30 술에 취한 알렉산더가 도시 전체를 파괴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린다.

실은 이 도시의 상징성을 그는 이해했다. 

훗날 그 어떤 저항도 불가능하도록 도시 전체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태우고 죽이고 약탈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반 가정까지 전부.

가장 끔찍한 테러와 혼돈chaos.

 

46:40 "알렉산더는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난동꾼hooligan"

 

다큐멘터리 속 여성 역사학자가 묻는다.

"문명의 건설자라고 자부하는 그리스인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페르시아를 야만인barbarian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또한 덧붙인다.

"그들의 파괴가 역설적으로 많은 것들을 잿더미 속에 보관했다."

 

덕분에 수만 개의 점토판이 고스란히 발굴되어 현대 고고학자, 역사학자의 눈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그리스인들 자신조차 페르시아의 영향을 심대하게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후기.

 

"알렉산더는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난동꾼"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어린 시절부터 읽은 위인전 시리즈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늘 포함되어 있었다.

스무 살 젊은 나이에 영웅이 되었고, 그 자질을 드러낸 사건이 누구도 풀지 못한 맺힌 매듭을 칼로 팍 끊어버렸다는 에피소드.

 

그는 누군가에게는 영웅이고 누군가에게는 난동꾼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진실의 모습에 가깝다.

 

진실은 절대적이 아니라, 경험적이고 주관적이다.

 

문제는 나의 진실이 누구의 진실로부터 시작되었는가,이다.

내가 나라고 믿은 것, 내가 진실이라고 믿은 것, 세계의 마땅한 질서라고 믿은 것은 어디에서 왔는가?

 

현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며, 미래를 어떤 관점으로 상상하고 기획하며 실천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