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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로의 치유와 성장

친절을 베푸는 방법 - Don't cast your pearls before swine

HaloKim 2020. 12. 22. 21:23

경전급 텍스트는 내 이해도에 따라 끊임없이 다르게 읽힌다.

높은 수준의 영적 원리를 함축하는 단순한 문장일수록 더 그러하다.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과거의 내가 예수님을 왠지 꺼림칙하게 느끼도록 만든 이유 중의 하나였다.

뭔가 알 것도 같고, 마음 한 구석에서는 '예수님도 사람 차별하시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이 말을 반복해서 음미한다.

"Don't cast your pearls before swine." (Matthew 7:6)

 

영역 성서를 단어 그대로 옮기면 "너의 진주를 돼지 앞에 흩뿌려놓지 말라" 정도 되겠다.

 

1. 귀한 것이란 무엇인가?

 

"너의 진주들YOUR pearls"이라고 표현했다.

네 눈에 좋아보여서 네가 쥐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겠다.

 

"나는 친절과 헌신, 희생을 베풀었는데 상대가 어쩌고 저쩌고.."

선한 희생자 의식victim consciousness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이고 고색창연한 치유 이슈다.

 

나 역시 그랬고, 치유가로 일하는 동안 예외없이 듣는 스토리텔링이다.

그것이 가족이나 인간 관계를 유익하게 만들지도, 직장 생활에서 잘 통하지도 않는데 계속 자기가 생각하는 행동 패턴을 반복한다.

그게 안 받아들여져서 힘들고 억울하고 고통스럽다.

 

나의 진주를 몰라보고 고마워 하지 않는 상대방이 "돼지"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인간의 에고란 그렇다.

 

2. 무엇이 최고최선인가?

 

먹는 게 바쁘고 힘겨운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최선이다.

물질이 최고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그러냐고 인정하면 된다.

 

거기다 대고 "진주가 최고야, 너도 이것이 필요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웃긴 것이다.

 

3. 상대는 무엇을 최고최선이라 여기는가?

 

말에 속는 것은 속는 사람의 경험 부족, 미성숙이다.

 

인간의 에고는 복합적, 입체적, 중층적이라 어떤 하나의 동기로 단순화 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본인조차도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

의식적, 무의식적인 포장이나 자기 기만은 누구에게나 있다.

교양과 지식, 영성, 선의가 화려하게 드러나는 사람이라면 더 애매할 것이다.

 

저변에 흐르는 참된 동기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저절로 드러난다.

특히 그가 걸음으로 걸어가는 방향을 살피면 된다.

 

"나는 진주가 좋아요, 진주를 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덥석 진주를 흩뿌려둔다면?

책임감 증후군, 구원자 증후군에 시달리는, 경험의 폭이 좁은 인간들이 흔히 하는 짓이다.

과거의 나, 지금도 종종.

흐이구~ 

 

4. 차크라적 이해

 

1번 뿌리 차크라가 불안정하면 생존 불안이 심하다.

그 에너지에 초점을 기울여 작업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돼지"의 에너지로 비유했을 수 있다.

 

자존감이 약하고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정 욕구를 채우려 떠돈다.

그에게 "진주"를 준다면, 냉큼 하나 챙겨 주머니에 넣거나 머리 위에 달고, 자기를 인정해줄 또 다른 상대를 찾아나설 것이다.

그것도 필요한 경험이다.

 

한 사람에게 계속 달라고 보챌 때 말려들어가면 상호 종속co-dependency 관계가 된다.

치유가, 영성가들이 주의할 지점.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해줄 대상을 찾아 떠돈다.

상대의 사랑을 끌어내는 고전적인 방법은 두 가지다.

참된 사랑을 주는 체 하거나, 약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척 하거나.

 

오늘의 생각 :

친절을 베푸는 방법을 지금보다 훨씬 더 다각도로 세밀히 연구하고 익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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