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바디® 힐링 하면서 어센션을!

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헤일로의 치유와 성장

정치와 나

HaloKim 2020. 12. 25. 20:42

나는 이제 나의 정치적 트라우마를 진실로 껴안기로 한다.

 

돌이켜 본다.

내 삶, 우리의 삶을 훼손한 많은 원인이 정치에서 왔다.

 

정치란 나의 삶이 작동되도록 깔려 있는 관리 시스템governance이다.

 

흔히 생각하는 좁은 의미의 정치politics를 포함하여 시장, 금융, 화폐, 교육, 물질 생산과 노동을 조직화 하는 방식, 신념을 조직화 하는 종교, 지식 생산과 유포 방식, 과학과 기술 개발의 방향, 미디어, 권력을 관리하는 국가 기구들, 무기와 전쟁, 국가와 국경 그 자체, 국제 기구 등 파워를 다루는 모든 방식이 곧 정치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는 정치 트라우마가 깊고도 깊다.

 

좁은 의미로 말하더라도, 20대 때 정부에 반대하는 사상을 가졌고 글을 써서 발표했다가 구속되었다.

갇혀서 심문받던 시기에 얻은 사람에 대한 이해가 크다.

그렇다고 해서 시스템의 폭력성을 잊은 것은 아니다.

 

남동생은 육군에 입대해서 법무부 산하 교도소 경비로 차출된 뒤 사람 때리고 괴롭히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혼자 맞다가 자살했다.

장례식에 정보원 둘이 나타나 "동생의 죽음을 문제 삼으면 가족 전체를 가만 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들의 인간적인 갈등을 얼굴에서 보았다고 해서 사건의 본질을 잊은 것은 아니다.

내가 이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20년간 끌어안고 고통 받은 끝에 영성가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해서 비통한 문제 의식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다.

 

멀게는 나의 전생들이 정치적 질문의 연속이었다.

기억을 복원한 최근 2천 년 동안의 지구 윤회는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고 세상을 구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배우는 기간이었다.

 

각각의 생애가 온갖 시행착오로 넘쳐났다.

노력과 상처, 고통, 실패, 

 

그 모든 이해가 가져다준 결론이 단순하다.

 

- 나는 지구상의 이런 통치 시스템governance을 싫어한다.

- 이 따위가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는 전부가 아님을 안다.

- 근본적 대안이 무엇인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를 받아들이는 여정이었다.

 

영적 거버넌스!

신성의 원리로 재편하는 것이다.

 

실상을 아무도 모르는 관념적 신에게 맡기고 성직자에게 철푸덕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 무지는 전생에서 다 해봤다.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답고 수준 높은 의식이 내 안의 신성이다.

모두에게 그것이 있다.

 

정치는 영성의 일부이고, 관건은 어떤 정치를 하느냐이다.

그 원리대로 삶의 철학과 시스템을 재편하는 것이 영적 거버넌스다.

 

어디서 시작하고 어떻게 창조되는가?

내 안에서 행한다.

 

그렇게 하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와  연결하고 공감하고 공명한다.

그 우리가 하나의 시스템, 신성한 거버넌스를 탄생시킨다.

 

이것을 조금 더 키워나가는 것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이렇게 이해하면 유학을 만들어낸 성인, 마스터들도 고마워 할 것이다.

 

신성의 거버넌스인가, 물질주의적 시스템인가.

나의 신성인가, 나를 소외시킨 채 외화된 신을 내세우는가.

폭넓은 연대와 인간 존중의 시스템인가, 물질과 권력에 중독된 소수에게 포획시키는 좀비 시스템인가.

 

그 선택이 나를, 관계를, 주위를, 돈을, 시스템을, 가치관을 물들이면 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 그러다 잘못 되면?

 

잘 됨의 정의, 즉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질 기회다.

 

- 과연 이루어질까? 어떤 결과를 얻게 될까?

 

결과는 내 책임이 아니다.

우리의 선택이 무언가를 드러낼 뿐이다.

내 책임이 아닌 것을 책임감 느끼는 척 하면서 걸음이 둔해지고 시야가 좁아진다.

 

나다움을 선택하고 내 식대로 살면 된다.

결과가 분명하기 때문에 알고 선택한다면 그것이 나의 진실이겠는가?

눈치 게임이겠지.

불확실성 속에서 나의 진리를 정의하고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해준다.

 

- 나쁜 **들이 여전히 득세하고 지배하잖아.

 

나는 그들을 싫어한다.

내 마음에 미움hatred이 있음을 인정한다. 가려지는 게 아니다.

 

그들은 나의 거울 이미지다. 뒤집힌 거울 이미지.

나는 그들이 그들 자신으로 존재하도록 인정한다.

내가 그랬듯이, 그러하듯이 당신도 당신들의 삶을 살라.

 

내가 연민과 동질감을 갖는 대상이 있다면, 수많은 연민의 일부분임을 이해한다.

 

미움에도 연민에도 발목 잡히지 않고, 그냥 나다움을 나는 살께.

 

- 근데 진짜로 가능해? 안 되면 어떡해?

 

이 질문에 덫이 있다.

자기 의심과 불안, 지금의 방식에 매달려 전전긍긍.

 

그것을 떠난 후에 길이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내 안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신에 대한 불신, 의심.

 

신(성)이 나에게 가까이 있는가, 나를 버린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이 근원적 고통이다.

 

바로 이 질문으로 인해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길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진실로 나 자신의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진실로 신성과 신적인 원리에 순명surrender한다.

그렇게 하기로 매순간 선택한다.

 

나는 말한다.

나는 지금 아프다.

 

그리고 더이상 비애에 발목 잡히지 않기.

핑계꺼리가 되지 않기를.

 

나는 나의 아픔을 껴안고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ps.

감사해요 나의 신성의 어머니, Mother/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