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를 시작하던 당시의 내 상황은 "막장 밑에 지하실 밑에 땅굴"이었다.
삶의 모든 측면이 그러하니까 아예 무감각한 측면이 있었다. 나 해탈한 거임? 주책맞은 생각을 할 정도로.
치유가 진행되면서 오히려 고통의 감각이 생생해졌는데, 그 와중에 진짜 괴로운 것 중 하나가 "나는 유능했는데"라는 기억이었다.
초라할수록 그 기억에 매달렸던 것 같다.
누구한테 조롱당하면, 내가 얼마나 유능했는지 얼마나 치유를 많이 했는지를 치유한 사람다운 평정심(?)으로 상대방을 위하여(?) 고상하게 떠들어대곤 했다. 속으론 몹시 불편하고 긴장한 채로.
자존심/ 수치심이 영적 자존심으로 가면을 바꿔쓴 모습.
(오랫만에 나에 대해 역겨운 느낌이 올라온다 ㅎㅎ)
이 병병(病病. 내가 안다고 믿으며, 병이 깊어 병인 줄도 모르는 상태를 지칭하는 노자의 표현)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내가 한 짓이 무너지는 수레바퀴의 가운데를 끼우는 막대 역할이었구나, 깨우치면서다.
바퀴의 살대들이 빠지고 수레바퀴가 덜컹거리면 일단 수레를 멈추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바퀴통 한 가운데로 기어들어가 덜컹거리는 수레바퀴를 계속 구르게 한다.
어느 정도는 통하지만 가장 먼저 바퀴통에 쑤셔넣은 막대기가 상하고 결국에는 수레 전체에 민폐가 된다.
그런 짓을 반복하면서 나는 착하고, 남다른 헌신과 희생을 했고, 그 보람이 없어, 라며 억울했던 것이다.
뼈저리게 나를 돌아보고 뜯어고친 수많은 그림자 중의 하나다.
힐러가 되고나서도 그 습은 끈질기게 영향을 미쳤으나 점점 나아지는 중이다.
그래서 그런 인간들을 보면 유독 예민하게 알아차린다.
몇 번 반복되는 언행을 접하면 그 에고의 구조와 행동 패턴이 영화 필름처럼 촤르륵 펼쳐지고,심지어 어떤 표정만으로도 에고의 비릿한fishy 냄새가 끼쳐온다.
내 뜰에 있는 잡초를 남의 정원에서 잘 알아보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유독 차가워진다.
힐링 스쿨 수료하고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는 단계쯤 되는 사람에게는 말을 직설적으로 한다.
힐러가 그런 짓을 오래 반복하면 욕도 서슴지 않는다.
이 지경이니 이번 생에 우찌 해볼끼라고 오매불망 하는 해탈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꼬라지를 10여년 빡세게 치유했으니, 앞으로 살 날 동안 계속하면 우찌 꿈꿔볼 수 있을라나 우짤라나.
오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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