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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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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문답

고통을 통해서 깨달아라 vs. 고통은 구시대적인 발상

HaloKim 2018. 6. 21. 02:33

이번 달 철학 강좌에서 선생님은 고통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고 했는데, 지난 번에는 고통은 하나의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구별되나요?


<고통을 통해서 깨닫는다>


저의 치유 여정을 돌아볼 때, 가족과 건강 등 삶의 고통이 너무 커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강렬한 동기였습니다. 


이십 대 때 묵주기도를 했는데, 길고 절절한 기도를 오랜 기간 압축하고 압축하니 한 마디가 되더군요. "주여 내게 평화를". 


평화는 쉽사리 오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치유적 영성에 대한 탐구를 멈출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가 모두 저의 고통이었어요. 가족의 불행을 바라보는 제 고통, 인간 관계의 고통, 몸이 죽음 직전까지 치닫는 고통. 이것을 해결하느라 제가 아는 모든 길을 넘어 모르는 길도 헤매고 다녔습니다. 


얼마 전 오랫만에 성당에 가서 성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평화롭습니다. 몸도 마음도.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7년. 오래 걸렸네요. 아니 짧게 걸렸어요."


고통과 타협하지 못했기에 온 몸과 마음으로 견딜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저로 하여금 평화를 구하게 만든 동력이었습니다. 번뇌가 곧 보리라고 하지요.


자기 자신의 조건으로부터 치유가 시작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힘껏 이해하는 데서 성장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저의 경험입니다.


<고통은 구시대적 발상>


공부 과정에서 발견한 것 중의 하나는 제 안에 있는 낡은 믿음 체계 그 자체가 고통의 한 원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사랑을 말씀하셨고 늘상 치유를 해주셨는데, 나는 여전히 신에게로 가는 길을 두려움과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 심지어 이것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카르마를 내려놓는 방법은 나의 마음 안에서 철저히 배우고 깨우치는 것인데, 무언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며 벌 받고 살아야 한다는 고정된 관념에 오염되어 있는 나 자신을 보았습니다.


신에게로 가는 길, 내 안에서 불성을 찾는 길이 고통과 처벌로 얼룩져 있다는 이 발상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낡은 믿음 체계입니다. 


사랑과 기쁨을 통해서 나의 절망을 치유합니다. 내 안의 빛을 믿고 나의 어둠을 뚫고 나아갑니다. 

내면의 신성을 확신하기에 내면의 부조화를 두려워 하지 않고, 그것이 온전히 드러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능동적 상상을 거듭하며 자신에 대한 긍정과 확신에 뿌리내리는 것이 치유의 비결입니다.


그리고 치유는 신을 발견하고 부처를 만나는 길 중의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