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로서 가장 놀랍고 충격적인 발견은, 여성들이 자신의 힘power을 두려워 한다는 사실이다.
강한 자신을 두려워하고 그 힘을 표현하지 않으려 강박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약한 척, 못난 척을 섞어가면서 우회적으로 타인을 지배하려는 기술을 쓰게 된다.
착한 사람이라는 자아상을 가지고 남한테 잘 베풀면서 조언하거나, 타인이 필요로 하는 것을 민감하게 눈치채고 미리 알아서 배려해주기, 성장하지 않은 순진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연출하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생존과 인정이다.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전략이다.
그러다 보니 머릿속이 복잡하고 감정적으로 모호하게 행동하며, 심지어 원하는 것과 말하는 것이 상반되는 경우도 흔하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우울증과 히스테리, 분노 사이를 오간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여성들이 이러한 트라우마를 지닌 채 살고 있다.
트라우마는 삶 전반을 지배한다.
문제는 이러한 전략이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데 있다.
들이는 노력이 어마어마한 데 비해서 얻어지는 것이 작다는 뜻이다.
그래서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사적 관계나 가족 관계에서는 어느 정도 통하지만
사회적, 공적 관계에서는 단순히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민폐가 된다.
특히 관리자나 중요한 위치라면 문제를 꼬이게 하고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린다.
똑똑하고 인지 능력이 명료한 여성들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더 골 때리는 복잡한 상황인 경우가 많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여성성femininity에 대한 문화적, 종교적 오해와 깊은 상관이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일단 "여자"라는 데 놓고 출발한다.
이러한 믿음 체계를 전달하는 일차적인 역할을 어머니가 주로 수행한다는 것도 슬픈 일이다.
딸들에게 "나처럼 살지 말라, 공부 열심히 해서 너는 너 일 하며 살라"고 하면서도
"여자답게" 키우려 발버둥 치고, 똑똑한 딸이 아들/남자를 능가하지 않도록 주의시킨다.
가부장제에 타협하고 수행하면서 그 시스템을 전수하는 역할마저 여성이 책임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신념 체계는 종교관에도 그대로 투사된다.
하나님/부처님/예수님께 기도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가이드 마스터가 성모님/관음보살님이라면 "끝발이 약해 보여서" 좋아하지 않는다.
근원의 신성이 남자일 거라는, 그래서 여성적 신성은 하위일 거라는 이 지독한 상상을 여성들 스스로가 당연하게받아들인다.
아니, 이상하다고 의심조차 하지 않는 집단 상념이다.
자신이 착한 여성이라고 여길 때, 훌륭한 여성이 되겠다고 결심할 때,
우리 자신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신이 우주의 모든 것이라면, 그 존재는 여성성과 남성성, 음과 양을 모두 갖춘 존재여야 마땅하지 않은가?
최근 프란시스코 교황께서 초기 기독교 안에서 여성들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한 언급은 그래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나는 자신을 비유적으로 상상할 때 "아기 사자"를 떠올리곤 했다.
힘은 있되 새끼에 머무르는 자아상을 성인이 되고나서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심리적 강박 관념이 얼마나 나를 혼란과 모순에 빠뜨렸는지,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다.
몇 달 전 명상 중에 분홍빛 사자를 떠올렸는데, 최근에 그와 닮은 실제 사자의 모습을 발견했다.
털이 풍성한 숫사자의 모습이다.
내가 숫사자처럼 아름답고 강인하고 우아하면 안될 일 있나?
전화기 바탕 화면에 사자 사진을 깔아두었는데, 볼 때마다 행복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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