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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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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로의 치유와 성장

노회찬, 그리고 창조적 엘리트

HaloKim 2018. 7. 25. 05:26

노회찬 님 부고를 보는 순간 띵 소리와 함께 머리 속 회로가 차단되었다.

생각과 감정이 쏟아질 것임을 알려주는 보호 기능이다.


첫 날은 그의 영혼을 위해 치유 기도를 하고 끝냈다.

  

오늘에야 지인들의 글과 뉴스의 댓글을 읽으며

같은 심정이구나, 위로가 된다.

 

상실감이 클 때,

나는 이 일이 어떤 결과를 맺을까 예상해보는 버릇이 있다.


촉이 좀 맞는 편인데,

영화계에서 밥 벌어 먹던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중 영화는 대중의 감정과 욕망을 읽어내거나 예측하는 창구가 된다.

흥행이란 대중의 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감정과 욕망 가운데,

무엇이 어떻게 자극되어 티켓 구매라는 행동으로 표면화 되는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정치도 이와 같다.

노회찬의 죽음이라는 이 강렬하고 "흥행성 있는" 스토리텔링이

한국 대중의 감정과 욕망 중에 무엇인가를 폭발시킬 거라는 예감이 든다.


파워 엘리트 시대의 종언이 될 것이라고

나는 예측한다.


"촛불 혁명"은

부패한 돈과 권력을 주축으로 하는 낡은 엘리트 그룹을 용납하고 싶지 않다는

정치적 욕망이다.


대중은 엘리트 그룹 내부의 교체를 이뤄주고

정권을 보호해 주면서 추이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런데 노회찬의 죽음에 반응하는 댓글들을 보면

어떤 정서 한 가지가 뚜렷하게 발견된다.


맡겨두기만 해서는 안되는구나 하는 "느낌"이다.


엘리트 그룹 내부의 권력 교체에 희망을 일임하는 것이

얼마나 허약하고 위험한 지를 정서적으로 실감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나 이론가들과 달리,


대중들에게는 정서적으로 실감할 때라야

비로소 힘으로 작동한다.


각성된 대중이 삶의 현장에서 살아있는 힘을 발휘할 때

사회는 비로소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인다.


나는 이들을 "창조적 엘리트"라고 부르겠다.


파워 엘리트든 창조적 엘리트든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누가 정신적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한국 사회의 미래가 크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창조적 엘리트는 정치 일선은 물론이고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전혀 새로운 얼굴로 등장할 것이다.


누군가는 이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지도 모른다.

보는 눈이 없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이들이 자기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물결을 이루며 흘러간다면

세계사적 전환기를 선도하는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인류 역사에는 이런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메디치 가의 부 아래 모여 들었던 르네상스 인간들,

베르사이유를 공략했던 프랑스 군중들 같은.


넋 놓고 안주하다가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신세가 될 지도 모르겠다.


이런 시대가 어쩌면 이미 도래하고 있고

노회찬의 죽음이 또 하나의 불쏘시개가 되는 것 같다는

느낌!


노회찬을 기리며

나를 위로하는

치유가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