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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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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로의 치유와 성장

미스터 션샤인, 멜로 드라마의 치유적 가능성

HaloKim 2018. 7. 30. 11:31

요즘 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특이하게도 몇 번씩 반복해서 보고싶은 생각이 든다.

 

아직 초반이라 감정이나 스토리의 매혹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가 5, 6편을 보는 동안 깨달았다.

 

독특한 연기 양식과 화면 구성 때문이었다.

 

배우들의 연기 톤은 미니멀리즘으로 조율되어 있다.

 

움직임이 최소화 되어 있고, 대사가 극히 정제되어 있으며

감정을 강렬하게 발산하기 보다는 대부분 낮은 톤이다.

 

주연, 조연, 단역까지 모두 같은 방식이므로

개개인의 연기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제작진 전체의 합의된 의도일 것이다.

  

배우들이 연기를 표현할 수단이라고는

가만히 선 채 취하는 눈빛과 포즈 뿐인가 싶을 정도이니,

이 한계를 뚫어낼 수 있는 능력자들만 캐스팅한 것 같다.

 

연기의 미니멀리즘과 대조를 이루는 것이

공간과 소품의 화려함이다. 

 

미국 공사관, 호텔, 궁궐은 말할 것도 없고

희성의 , 약방, 제물포항구 

주요 공간에는 무언가가 가득 들어차 있다.

 

세련되긴 하나 과도하게 채워진 공간은

귀족과 야심가들의 심리 상태인 것 같기도 하다.

 

또한 제작진은 화면 구성에도 매우 숙련되어 있다.

미장센을 통해 의미를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으니

배우의 감정과 동작의 표현 수위를

낮은 톤으로 유지시키겠다는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유진이 희성의 집을 찾아가 총을 겨눌 

평소 과묵하게 억눌려 있는 그의 감정이

실은 얼마나 위태로운 상태인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었다.

기울어진 지붕선과 기둥이 만들어내는 휘어진 사각형 안에

삐딱하게 서 있는 유진의 실루엣이

배우의 연기만큼이나 많은 설명을 주었다.

 

고애신의 한복 치맛자락이 구동매의 손을 스칠 

화면의 절반을 차지하는 붉은 톤 위에

동매의 시선이 걸쳐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애욕이 충분하게 전달된다.

 

각 파트의 제작진들이 갖추고 있는

여러 소양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예컨대, 쿠도 히나의 어떤 옷차림은

인상주의 그림에서 빠져나온 여주인공 같았다. 

 

확실하게 제시되는 미장센, 

정교한 공간과 소품들 덕분에

미니멀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의 온갖 감정이 풍부하게 전달된다.

 

이런 풍성스러움이

드라마를 반복해서 보고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볼 때마다 지루하지 않았다.

 

또한 단촐한 연기 덕분에

피로감 없이 담백한 맛을 느낀다.

 

그런데 이러한 연출 기법이 결과적으로

드라마를 만화책처럼 보이게 만든다.

 

화면 안에 무언가를 가득 그려넣을 수 있지만

인물은 스냅샷을 나열하듯이 표현할 수밖에 없으므로

눈빛과 표정이 강렬해지는 만화.

 

구한말이라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시대를

만화같은 화면 안으로 정성스레 끌고 온 제작진의 의도는

어떤 효과를 만들어내는가?

 

내 생각에는 이 드라마가

사극이 아닌 심리극이라는 뜻이다.

 

제작진은 마치 우리에게

그 시대에 대해 구체적인것을 너무 많이 알려 달라고 요구하지 마세요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대신에

구한말의 상황이 이 시대와 매우 비슷해 보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사회심리적 상태에 놓여 있는가?”

라고 묻는 것이다.

 

등장 인물들은 당대의 여러 계층과 성향을 배열하지만

훨씬 더 염두에 둔 것은 

지금 이 시대의 사회경제적 위치와 성향이다.

 

애초에 사극이란 과거를 빙자해

현재의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장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유명한 말대로

사극 또한 한때 실재했던 시대를 단서삼아

지금 우리의 마음들을 묻고 펼쳐보이는

놀이터, 

제법 진지한 놀이터인 것이다.

 

제작진의 의도는 실현되고 있는 것 같다.

댓글들을 보면

각 인물들의 처지와 심리를 해석하면서,

자기를 동일시하거나 점검하는

시청자들의 심리 게임이 펼쳐지는 중이다.

 

김은숙 작가는 자신의 장르 안에서 계속 발전하고 있다.

<시크릿가든> 류의 여성 판타지를 능숙하게 마스터 한 ,

<태양의후예>에서 여성의 주체성을 획득하고,

<도깨비>라는 환상의 공간을지나,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역사를 공간 삼아 인간의 정체성과 심리를 탐구한다.  

 

공포와 기회, 체념과 용기, 큰 혼란과 작은 희망이 뒤섞인

2018년의 한국에서 당신은 지금

어떤 위치에 속해 있으며

어떤 선택을 하고 싶습니까?  

 

사랑 타령을 본질로 하는 멜로 드라마는

이런 질문들을 담아 내기에도 매우 좋은 장르다.


작가는 인간의 정체성이란

조건과 선택의 결합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역사적, 사회적, 가정적으로 주어진 조건에 대해서

각 개인이 어떻게 반응하고 선택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김은숙 작가는 스스로 성장하는 동시에

한국 멜로 드라마를 성장시키는 중이다.

 

 드라마와 댓글을 번갈아 보면서

나는 한국 사회의 힘을 느낀다.

 

대중 문화, 사회, 치유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