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강좌를 위해 노자 <도덕경>을 다시 읽었다.
치유를 혼자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헤맬 때,
어떤 부분들을 내려놓고 넘어서는 데 도움이 되었던 책이다.
이번에는 여러 번 낄낄거리며 읽었다.
때때로 어떤 구절들은 등골이 서늘했다.
요한복음 그리스어 원본 서문에 나오는 천지창조 대목을 연상시키는 구절,
양자물리학, 우주물리학 애호가들이 뻑갈 만한 대목,
이 양반이 프로이드를 읽으셨나 싶은 대목.
뉴욕에서 행세깨나 한다는 지식인들이
<도덕경> 읽는 게 붐이라는 소리를 들은 지가 꽤 되었다.
내가 사는 미국 서쪽도 동네마다 <도덕경> 스터디 그룹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는 결코 "무위자연"을 무기력하고 한가하게 지내라는 뜻으로 말하지 않았다.
나는 2천5백 년전쯤 살다 갔을 현자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며칠 전 꿈에 그가 어떤 이미지를 보여 주었다.
해석이 모호하던 두 글자의 의미를 알려주는 꿈이었다.
훌륭한 한문 완역본과 영역본을 두고 읽는 것이니
뜻 자체를 모른다 할 수는 없었으나
당대의 한자 용례가 어떤 문화적 맥락으로 통용되었는지를 모르니,
근본 의도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넘긴 대목이었다.
옛 지혜가 빛 속에서 생생히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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