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현장에서 직면하는 의외의 두려움이 두 가지 있다.
- 사이비에 홀리는 것 아닌가? 가족이나 지인, 종교 단체에서 어떤 평판이 날까?
- 내 이야기가 뒷말로 돌게 되지 않을까?
"사이비" 즉 비제도권 영성의 건강성 여부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여기서는 일단 연관성이 있는 기존의 글로 대신한다. http://blog.daum.net/halokim.healer/306 <사이비, 무당 그리고 힐러>
두 가지 두려움은 뒷공론에 대한 공포라는 공통점이 포함된다.
뒷말이란 내 앞에서 말해지지 않은 피드백이다.
다양한 피드백이 있을 것은 당연하고, 각자의 관점에 대해 좋고 나쁨을 말하기 어렵다.
개개인이 자신의 관점과 선택을 향해 나아가는 이면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초점을 기울일 지점은 그에 대한 공포심이다.
일단 두려움과 공포는 다르다.
두려움fear은 낯선 것이 등장했음을 알려주는 신경생리학적 반응이다.
낯설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새롭다는 뜻이기도 하다.
에고 입장에서는 둘 다 똑같다. 처리해본 데이터가 불충분하기에 빨간 불이 깜빡이는 것이다.
치유란 새롭게 하려는 시도이므로 에고가 두려움이라는 신호를 깜빡거리고,
그 덕분에 우리는 속도를 늦추면서 주위와 나를 신중히 살피는 기회를 마련한다.
반면 공포phobia는 데이터를 고정시켜 두고 거기에 매어 있는 상태다.
어떤 경험이나 선입관을 끌어와서 해석한 뒤 방어벽을 치고 그 안에 스스로 갇혀 있거나,
결정을 못 내리고 오락가락 전전긍긍anxiety 하며 에너지를 소진한다.
안전하기 위해서 그런다고 하지만 내부로부터 스스로를 갉아먹는 안전하지 않은 습관이다.
치유를 시작하기 전이라면 충분한 시간과 조건에서 안전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 된다.
심화 단계에 접어들면 방법이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알 만큼 알면서도 본격적인 자기 혁신의 고통을 피해 요리조리 딴청을 피우는 시기가 반드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나는 다 안다, 너보다 많이 안다"는 자존심/ 영적 자존심을 내세우거나
"잘 모르겠다, 나는 너무 약하다, 부족하다"며 달달한 관계에 안주하기 위해 기를 쓰고 매달리는 것이다.
그 방어벽을 건드리면 기겁을 하며 온갖 신음이 터져 나온다.
깊숙이 들어가는 것은 위태로운 순간들의 연속이다.
드러냄의 저항과 공포를 다루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기준이 있다.
- 본인이 이미 공개한 정보를 동일한 범위 안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선을 넘는 것은 극약 처방이다.
- 그 팩트를 새로운 해석으로 바꿔주되, 교육 과정을 통해 배워서 모두가 익히 아는 개념을 사용한다.
예컨대 반복되는 어떤 이야기나 태도를 "선하다는 오만" 등의 프레임으로 전환시켜 준다.
드러냄에 대한 공포가 실재에 기반하기보다는 자신의 심리적 풍경임을 깨우치는 것이다.
막연한 공포를 걷어내고 거기에 낭비하는 에너지만 줄여도 살아가는 힘이 달라진다.
치유 자체가 인간의 공포심에 갇혀 있는 생명력 에너지를 평화로운 창조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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