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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문답

힐러 워크샵 5. 공부, 성장인가 중독인가

HaloKim 2020. 9. 13. 21:05

펭수가 그러더군요.

"공부를 많이 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많이 하면 좋지 않습니다.”

 

열 살의 저 이방인 캐릭터가 제기하는 아슬아슬한 문제 제기를 힐러들에게 적용하면 아주 절묘한 화두가 됩니다.

 

저희 시스템 안에서 배우려는 분들 중에 제게 힐러 겸 교사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러면 저는 상당히 이질적인 교사를 추천해드리곤 합니다.

 

미팅을 통해서 그 분에 대해 대략의 이해를 한 다음, 어떤 부분을 내려놓고 어떤 부분을 보완하시면 좋을지 나름대로 생각해보는데요

학력이나 전문성, 삶의 경험 등 어떤 요소들이 서로 대조가 심할수록 교육 과정에 팽팽한 긴장이 돌겠지요.

 

물론 교사는 또 다른 측면의 자질과 훈련, 태도가 있는 분들이고, 당연히 어떤 수준의 성과를 만들어내면서 서로 성장할 수 있는 단계에 오른 분들을 추천합니다.

 

다만 처음부터 자신의 교사로부터 그런 측면을 발견해낼 수 있는 학생은 많지 않아요.

교사 스스로도 자기 확신이 약하고요.

 

치유와 영성은 결국 자기 확신의 여정인데, 시작부터 확신에 차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다면 오히려 위험한 거죠.

 

그러니 이런 만남에서 아무리 겸손하고 진지한 학생분들일지라도 기대는 쉽게 깨질 것입니다.

교재는 의문스럽고, 한글만 읽을 줄 알면 누구나 알아들을 만큼 평이해 보일 거예요.

 

나는 대체 뭘 배울 수 있을까, 갈등할 테지요.

, 배움에 대한 정의 그 자체, 지식에 대한 상 자체가 깨지면서 고비를 넘을 거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에고 가운데 가장 봉우리가 높은 것이 자존심, 인정 욕구, 우월감이잖아요?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이니까 그만큼 열등감의 그림자, 상처도 짙을 겁니다.

 

이러한 이원성을 진실로 넘어서는 경험, 이것이 학생이라는 위치, 역할에서 배우고 연습할 중요한 수행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서구 지식인들 사이에서 <도덕경> 붐이 일어난 지 꽤 되었는데요, 미국의 대표적인 도덕경 연구가인 스티븐 미첼Stephen Mitchell이 그러더군요.

나는 선 수행을 통해서 그동안 교육받은 것들을 내려놓았다de-educated.”

 

힐링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는 위치에 있을 때 기존의 교육과 지식에 대한 상을 내려놓는 과정de-educated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당신이 곧 힐러이자 교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배움의 환상을 벗어나지 못하면, 가르침에 대한 환상을 쥔 채로 교사가 될테지요.

그런 교사의 고통이 어떻겠습니까?

 

내가 가르치게 될 모든 학생으로부터 전적으로 신뢰와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나보다 뛰어난 부분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모르는 삶의 스토리, 내가 모르는 에고의 영역에 대가들이예요.

 

힐러란 그런 누군가의 삶에 개입해서 그의 내면이 전환되고 외부 현실로 드러나는 지난한 과정을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지식을 가르쳐서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는 생초보라는 의미일테지요.

곧바로 벽에 부딪칩니다.

 

물론 힐러들은 끝없이 배우고 성장합니다.

실제로 힐러가 되는 분들은 성장 욕구가 강하고 평생에 걸쳐 배움을 멈추지 않는 특징이 있더군요.

학력이나 직업은 전혀 상관이 없고, 지식인이냐 아니냐, 이런 문제는 더더욱 아니고요.

이런 삶의 방식이 그 분들을 치유가, 영성가의 길로 스스로 이끌었을 것이고 귀중한 자질입니다.

 

그런데 직업의 세계에서는 지식이란 최소한의 기본 요소일 뿐이잖아요?

지식만 늘리는 것은 아무리 배워도 영원히 학생인 거예요.

 

힐링 스쿨을 마친 분들께 힐러 일을 시작해보세요, 라고 하면 허둥지둥 하면서 책을 사들이거나 치유 테크닉을 무슨 요리 레시피마냥 쌓아두려 해요.

뭔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배워야 한다 그러고, 심지어 학벌을 늘려야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나 이런 방식의 배움으로는 힐러로서의 삶을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을 뿐더러자기 확신이 늘어나지도 않을 겁니다.

이미 아는 것을 끌어안고 어쩌지 못해 끙끙대면서, 더 많이 알면 혼란이 해소될 것이라는 어설픈 기대를 반복하는 거죠.

 

정작 필요한 과정들을 회피하면서 뭔가 열심히 하는 것 같은 환상을 끊임없이 만들어서 자신을 속이는 거예요.

만약 평화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갈증이 증폭된다면, 당신은 배움 중독 상태에 있는 겁니다.

 

힐러로서의 배움이란 멈추어 서서 안으로 파고드는 시간이 훨씬 더 길고 고통스럽고 치열하게 전개됩니다.

머리로 납득되고 와 닿은 핵심 지식 한 조각을 소화하는 시간

소화한 것을 자기 내면에 적용시켜서 한 땀 한 땀 변화시키는 과정의 연속,

그 작은 성과를 "비루한" 내 일상에서 구현하는 시간

그 노하우를 깊고 세밀하게 갈고 닦으며 조금씩 확장시켜나가는 하루하루의 반복

 

다른 말로 하면, 멘탈체의 정보를 4바디 안에 체화하고 통합하는 실천적 배움의 연속입니다.

 

1kg의 지식을 매일의 걸음걸음으로 빚어낸 1g의 보석, 그것이 힐러의 앎knowingness입니다.

 

그 앎을 나의 클라이언트/학생에게 공유하는 거지요.

가르치거나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의 말을 수없이 듣는 와중에 슬쩍 끼워넣는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 앎에는 당신의 고유한 파동frequency과 에너지가 새겨져 있어요.

힐러인 당신의 언어, 눈빛, 목소리, 심장, 손짓이 그 파동을 발산하여 에너지 공간energy space을 만들어냅니다. 

클라이언트로 하여금 그 지혜와 사랑의 볼텍스vortex에 머무르게 해주십시오.

 

이런 것이 힐러의 길입니다.

 

물론 힐러가 알아야 할 핵심적인 지식들이 있습니다.

핵심이란 자각과 치유를 불러일으키는 고도의 원리들을 뜻하겠지요

나머지 온갖 지식들은 보조 수단이고요.

 

그런데 말이죠

그 핵심 지식이라는 것, 치유의 원리를 이미 세상 사람 모두가 알아요.

 

그래서 힐러의 실력은 얼마만큼 아느냐가 아니라, 얼마만큼 스스로에게 적용했느냐, 딱 거기서 판가름 납니다.

 

클라이언트도 처음에는 헷갈릴 수 있지만, 곧 힐러의 진정성과 치열함, 역량을 눈치챌 것입니다.

그들 역시 삶의 길을 묻고, 그 길을 진실로 끈기있게 동행할 경험있는 가이드를 찾는 중이기 때문이지요.

 

힐러의 삶에서 보람있고 기쁘고 영광스러운 순간은 말 그대로 순간일 뿐입니다.

여느 다른 직업인들과 마찬가지로,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을 성실히 살다가 어느 순간 문득 기쁨이 선물처럼 찾아오고, 이내 사라집니다.

 

그러니 내가 힐러야, 그러니까 뭔가 압도적인, 그럴싸한 말을 해서 사람들의 삶을 확 바꿔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내가 뭔가 인정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면 이미 지는 게임을 시작한 거예요.

 

힐링은 누군가의 열등감이나 뿌리내리지 못한 삶을 한 방에 되치기하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힐러라는 이름으로 컨트롤 욕구나 우월감을 만족시키는 행위도 아니지요.

 

그냥 비로소 우리의 삶이 평범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