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박원순, 시장 박원순, 정치인 박원순, 남자 박원순...
내가 인식하는 박원순...
그의 생애에 관해 알려진 사실들을 통해 나는 인간 박원순을 존경한다.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거라고 단언한다.
그는 스스로를 맑게 하면서 시대를 맑게 하였다.
십여 년 전 한국을 떠날 때까지,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비명을 지른다고 느꼈다.
내 상태가 안 좋았던 탓도 있고, 도시의 느낌이 드세고 공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서울의 어딘가를 다닐 때마다 섬세하고 미적인 인간의 배려깊은 손길이 구석구석 느껴졌다.
도대체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리도 달라질 수 있는가?
나는 그 시기동안 시장이었던 박원순을 떠올리곤 했다.
나는 비로소 서울이라는 도시를 사랑할 수 있다.
정치인 박원순은 아마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르는 시점이었을 것이다.
인격적인 사람, 섬세한 전문가, 이런 자질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비통한 세계.
개인의 이해관계와 생존술, 어리석거나 어리숙한 신념을 위해 극단의 전투와 간흉을 마다하지 않는 꾼들이 득시글거리는.
인간 에고에 어지간히 도가 튼 사람들조차 때로는 눈을 질끈 감게 되는.
최근의 박원순에게서 정치인의 냄새가 풍기기는 했으나, 나에게는 어쩐지 정치판을 헤쳐 나갈 만한 사람으로 보여지지는 않았다.
인간 박원순에 대한 존경이자, 정치인 박원순에 대한 내 식의 평가이다.
그의 실종 뉴스와 느닷없는 비보 앞에서, 나는 멍 때렸다.
아무런 이유도 몰랐지만, 왠지 알 것 같은 싸아한 기분.
짐작했던 세 가지 가능성 중에 하나가 풍문으로 떠돈다.
그에게 어떤 약점이나 실수가 있었을 수도 있다.
사실이라면 누군가에게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남자 박원순은 죽음으로써 정확한 사실 관계를 묻어 버렸다.
명예를 지키고 싶었든, 사죄를 하고 싶었든, 한 인간이 치를 수 있는 가장 비싼 댓가를 치뤘다.
나는 여기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싶다.
슬픈 것 하나.
살아있을 때 그를 죽이고 싶었을 사람들이 남자 박원순의 미확인 약점과 죽은 살점과 전 생애의 명예를 물어 뜯는다.
여자 사람이나 남자 사람이나 다 함께 할 일이 많은 세상이다.
이 슬픈 존재들을 껴안으며, 부대끼며.
ps.
노회찬 이후의 정의당은 재수없지만, 그들의 논평대로 어떤 여성이 "내가 사람을 죽게 했다"는 자책은 하지 않기를 나도 바란다.
박원순은 박원순이라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이지, 당신 때문은 아마도 아닐 것이다.
'나, 그대,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원순 시장의 마지막 공로 (0) | 2020.07.13 |
---|---|
민주주의 제단에 바쳐지는 목숨들 (0) | 2020.07.12 |
허무 vs. 기쁨 (0) | 2020.07.09 |
교육 vs. 깨달음 (0) | 2020.06.19 |
천재를 보는 즐거움 - 김신영의 여성들 (0) | 2020.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