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코지만 괜찮아>는 매우 반가운 드라마다.
가족 내부의 폭력과 학대를 다루는 시야가 우선 놀랍고, 치유의 본질과 원리를 시종일관 진지하게 제시하고 있어서 고맙다.
가족 문제를 다루는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좌고우면 하면서 가족 이데올로기와 타협을 하는 데 반해, 이 드라마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밀어부쳤다.
그 용기와 문제 의식에 경의를 표한다.
물론 보는 이의 심리적 저항을 감안한 안전 장치들을 가동했고 그로 인해 드라마는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잔혹 동화의 스타일과 내러티브, 을씨년스러운 고딕풍 공간,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정신병원, 멜로적 관계의 과잉 같은 요소들이다.
그러나 가정이 물리적, 심리적 학대가 만연한 잔혹한 공간일 수 있다는 쓰라린 진실을 이런 장치 없이 맨 눈으로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오히려 저 비현실적인 장치들 덕분에 우리는 TV를 통해서나마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대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은 고마운 기회가 되었다.
나 자신의 치유 여정을 담담히 돌이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른바 복합적으로 잘 돌아가지 않는 가정multi-dysfunctional family 출신으로서 많은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극중 인물들이 겪는 거의 모든 치유 과정들을 나 역시 고스란히 겪었다.
그 당시의 경험은 글로 남아있지 않다.
그 격렬함 속에서 죽기 살기로 치유에 매달리는 몇 년 동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다.
훗날 세션과 교육을 하면서 생생한 경험담과 치유 원리를 참조하고 싶으니 책으로 써보라는 요청들이 있었고 나도 필요성을 많이 느꼈지만, 한껏 쓰다가 통째로 버리기를 여러 번 했다.
여전히 드러내기 힘든 부분이 남아 있었는데 그것 없는 글이라는 게 나로서는 앙꼬 빠진 붕어빵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여유를 갖고 온전히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구구절절 말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버렸다.
심지어 그런 감정에 대한 기억조차 희미하다.
살 만하면 잊혀지는 게 순리인 것 같다.
무엇보다 큰 차이는 시선이다.
지금의 나는 가족을 보는 시선, 아니 삶 전체를 대하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더이상 아프지 않고, 무엇에 구속당하지 않고, 원망이나 분노, 미련이나 회한이 없다.
누구의 사랑을 받고 싶거나 누구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런 상태를 무어라 부르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냥 인간사와 인간 에고에 대해 비정해졌다고 스스로 말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어떤 이들은 이런 나에게서 따뜻함과 정성을 본다고 한다.
비정한 따뜻함.
그럴 수도 있겠다.
이 시선으로 <싸이코지만 괜찮아>를 경유하여 나를 들여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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