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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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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사례

싸이코지만 괜찮아 - 6. 용서란 무엇인가

HaloKim 2020. 9. 4. 20:35

이 드라마의 가장 어려운 치유 주제는 고문영이 책임지고 있다.

용서와 화해, 돌봄의 의무에 관한 것이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있고, 자신을 학대했던 어머니는 살인 혐의로 감옥에 갇힌다.

오지왕 원장이 아버지를 산책시키고 환자들에게 동화 클래스를 열어 봉사하라는 "처방"을 내린다.

오 원장은 이 부녀의 스토리를 충분히 알지 못했고 고문영은 다시한번 위험한 상황에 빠진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무렵 주변 사람들이 고문영에게 가보라고 권유한다.

"성격 못된" 고문영의 입을 빌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부모는 왜 자식한테 용서를 구하는 거야? 자기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나중에 아버지의 무덤에 조문하면서 문영은 울지 않는다.

 

그리고 엄마를 찾아가 말한다.

"난 엄마랑 달라. 엄마는 온기가 뭔지 몰라. 난 이제 알았거든."

포악을 떠는 엄마에게 뒤돌아서며 덧붙인다.

"밥은 열심히 챙겨먹어. 난 앞으로 열심히 엄마를 머리 속에서 지울테니까."

 

가족 드라마의 흔한 해피 엔딩과 달리 문영은 부모로부터 떠나는 결정을 내린다.

대신 "가족은 호적이 아니라 사진이지"라며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나간다.

 

또한 용서는 화해와 다르다.

용서는 삶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상대에 대한 감정과 분별심을 내려놓음으로써 스스로의 힘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화해는 관계를 복구하고 이어가는 것이므로 경계선 설정 등 삶의 기술에 대한 재양육 과정을 필요로 한다.

 

물론 치유가 성공적일수록 대부분은 가족과의 관계가 강화되고 진실된 친밀함intimacy을 경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가족으로부터 안전하게 분리하는 기술도 힐러로서는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문제의 중요성은 오 원장의 입을 통해 표현된다.

그는 훌륭한 의사였지만, 그럼에도  "정답이랍시고" 화해의 해결책을 내세웠던 사실에 대해 "미안해서 어쩌냐"라고 말한다.

 

잘 하고 싶어서 전전긍긍하며 조언을 청하는 힐러들에게 나는 늘 이렇게 환기시킨다.

 

"모르는 게 당연해요. 

안다고 생각하는 힐러가 도리어 위험합니다.

클라이언트의 말을 잘 들으세요. 

무슨 말을 해줄까 궁리하지 말고 자신을 텅 비운 채 경청하세요.

그러면 무엇이 필요한 지 알아집니다."

 

강태의 절친인 재수가 말했다.

"내가 그렇게 붙어있는 이유는 그 애를 모르기 때문이예요."

 

나는 2018년에 멘토 선생님 앞에서 고문영과 유사한 선택을 천명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어머니를 용서할 수 있나요?"라고 채널링을 해주었던 바로 그 분이다.

그 후로 꾸준히 선생님께 배웠는데 신비주의적인 DNA 활성화 테크닉과 어센션에 대해 주로 공부했다.

 

7년째인 그 해 5월 해외에서 열린 워크샵에 참석했더니 선생님은 "부처님께서 오늘 헤일로가 어센션을 할 것이라고 하셨다"며 기쁨에 들뜬 모습이었다.

그 전제 조건은 "엄마와 내가 하나임을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삶에 대해 별 흥미가 없는 나는 인생 목표를 어센션ascension으로 정했다.

익숙한 말로 하면 깨달음이나 해탈쯤 되겠는데, 내 식으로 내 멋대로 공부하면서 나름 진지하게 추구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런데 나는 워크샵이 진행되는 열흘 내내 이렇게 답했다.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는 엄마를 내려놓고 언젠가는 일치 의식unity consciousness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강요하지 말아주세요.

 

지금 어센션을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 방식과 때는 제가 결정할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는 충격을, 여러 나라에서 온 기라성 같은 영성가들에게는 실망을 남기고 돌아온 뒤 오랫동안 이 문제를 되새겼다.

그리고 아예 내가 알고 있던 개념을 바꿔버렸다.

 

깨달음이란 공부를 마치거나 어떤 결정적인 경지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치유와 성장을 이어나가는 것이라고.

나에게 어센션이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ever-ascending "삶의 방식"을 뜻한다고.

 

이제 나는 그 어떤 것도 강박적으로 추구하지 않는다.

용서도 어센션조차도.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기.

나는 착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으며, 거룩하지도 않고 수치스럽지도 않다.

그냥 가물가물한 내가 좋다.

비로소 치유가로서 자신감이 생겼다.

 

<싸이코지만 괜찮아It's ok to not be ok>의 영어 제목이 내가 자주 쓰던 말과 비슷해서 흥미로웠다.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공부한 한국계 젊은이들은 속마음을 드러내거나 깊은 생각을 표현할 때 영어로 소통을 한다.

집에서는 주로 한국말을 하지만 사실상 제1언어가 영어인 셈이다.

 

20대 여성 클라이언트가 엄마로부터 "머저리"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고, 실제 자신이 얼마나 못났는지 영어로 정신없이 떠들었다. 

나는 "안 괜찮아도 괜찮다it's ok not to be ok"라고 여러번 속삭였다. 

그녀는 "안 괜찮은데 어떻게 괜찮아요?how can I be ok if I'm not ok?"라고 소리지르며 울었다.

 

얼마 후 본인 스스로  "안 괜찮아도 괜찮아요it's ok not to be ok"라고 말하더니, 다시 몇 달이 지나자 스스로 해보겠다며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중요한 것을 알아차렸다.

그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