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 행복한 기분.
어떤 이슈의 마지막, 핵심까지 접근했을 때 느껴지는.
지금 시국에 대한 논리적 이해, 결정과 선택까지 완료하고도 알지 못했던 마지막 한 가지.
이 사태를 우리가, 내가 허용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불분명했다.
어떤 이는 이것을, 어떤 이는 저것을 선택했다.
우리가 창조한 결과물을 다 함께 목도하고 있다.
사회 공동체, 인류에 대한 사랑은 추상적으로 아름다운 소망을 가지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런 저런 선택을 한 모두를 나의 일부로 받아들을 때 비로소 나의 소망이 참되다.
보다 중요한 측면은, 상반되는 모든 것들이 펼쳐지도록 내가 허락했다는 사실이다.
- 생명의 원리와 무관한 물질 생산의 방식
- 더이상 의미없이 넘쳐나는 물질들
- 분배의 지독한 모순
- 자연 - 동물, 식물, 땅, 물, 공기에 대한 끔찍한 야만
- 타자에 대한 분별심
-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생존과 노동에 대해 눈감기
- 아동 학대에 불과한 교육 시스템
- 가정 단위에 삶의 책임을 전부 집어던진 공동체/국가의 맹목성
- 건강 관리 시스템의 무지와 폭력적인 탐욕
- 물욕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 하도록 허용하기
- 권력 기관과 재벌, 언론이 그렇게 정당화 하도록 모든 권한을 내어주기
빛과 어둠 둘 다 내가 허락한 방식이다.
나는 이제 빛의 방향을 명확히 선택하고 걸어가겠지만, 어둠을 통해 지구상의 삶을 탐색하는explore 것 또한 내가 허용한 일이다.
누구나 선명히 인식하는 우리 존재와 세계의 모순이 이러한 방식으로 펼쳐지는 것을 내가 허락했었던 것이다.
나는 내 안의 이 모순을 치유할 책임을 받아들인다.
나의 영적인 성장이 사회의 일원이자 지구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참된 깨달음에 이르려면 이 받아들임이 필요했다.
책임을 인정한다고 해서 내 잘못이라고 물러서거나 입을 다물고 허용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나의 책임 부분을 100%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치유가 시작될 수 있을 뿐이다.
지구의 운명, 사회나 국가의 운명은 내 책임이 아니다.
모두의 선택을 통하여 뜻이 강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고, 그것이 이 시국의 결론이 될 것이다.
다만 내가 누구인가, 어떤 방향을 선택하며 살았는가는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시국의 탓이 아니다.
내 안으로 완전히 돌아올 때라야 모든 숙고는 종료된다.
나의 모순을 치유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기분이 명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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