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다.
라트비아라는 나라의 어느 병원에서 코로나 감염으로 숨진 것을 현지의 영화감독이 수소문해서 발견했다고 하니,
마지막 모습도 세상의 방랑자답다.
김 감독은 20년 전 내가 기획 프로듀서로 일하던 영화사에서 2, 3년에 걸쳐 세 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그의 초기 영화들이 물리적 폭력과 여성에 대한 노골적 성학대를 포함하고 있어서 함께 일을 해야만 했던 나는 충격이 컸다.
영화 기자, 평론가, 대학 강의 등을 전력으로 삼던 여성 영화인의 입장에서 갈등을 했던 것이다.
몇 달간 지속된 고민을 거쳐 일의 방향을 잡았다.
- 어떤 영화가 이 세상에 존재할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할 자격은 나에게 없다.
- 그의 영화에 투영되는 폭력성이 어디에서 기인하는가를 감독의 개인사, 가족사, 한국 사회의 맥락 속에서 정확하게 드러내겠다.
- 비참한 실존을 딛고 영화인으로 살아남은 한 인간의 고군분투, 자기 모순이 드러내는 충격적인 미의식과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통찰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영화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가진다.
이 접근법이 담긴 자료가 국제 영화계에서 설득력을 발휘했고, 감독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일한 모두에게 큰 기회를 제공했다.
사무실에서 업무 관련 대화를 하다가 둘만 있게 된 순간에 물어보았다.
여성 문제에 대한 소문에 대해.
그는 대답했다.
- 난 여성들의 의사를 물어요.
- 당신이 내 엔진을 꺼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줘요.
나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감독은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성공을 끝으로 회사를 떠나 독립했고,
나는 같은 회사에서 계속 일하다가 아예 영화계를 떠나 치유가의 길을 걸은 지가 10년이 넘었다.
근년에 그가 미투 운동의 대상이 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얼굴을 보지 못한 지난 20년 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원래 그랬을까?
아니면 세계적 대가로 대접받고 행세하면서 "여성들의 의사를 묻는" 것조차 생략해버리고 "엔진"을 내달린 걸까.
그의 죽음에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호상"이라 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지나치게 솔직해서 잔인한 느낌도 들고,
그 관점이 드러내는 여러 결들이 이해도 된다.
상처받은 여성들이 내 곁에 있었다면 나는 더 큰 욕을 했을 수도 있다.
오늘 하루 생각해보니 "호상"이라는 말에 가장 크게 동의할 존재는 감독 자신의 영혼이 아닐까 싶다.
빛과 그림자의 대조가 큰 생을 선택해서 많이 이루고, 많이 배웠다고.
다음 여정은 이번에 만든 그림자를 대면하는 삶을 만들어보자고.
만약 그에게 내생이 있다면 가해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선한 치유자가 되기를.
그의 영혼에 기대어 추모의 마음을 남긴다.
영화 <시민 케인>을 떠올린다.'
세상을 떠난 어떤 인물을 회고하는 주변사람들의 시선과 관점이 얼마나 다른지 나열하고,
주인공이 실제 어떤 사람이었는지 전모를 아는 사람은 없다는 결론을 암시하는데,
영화사의 걸작으로 꼽힌다.
인간 김기덕.
누군가에게는 죽음마저 저주할 어두운 존재였을 수 있고,
나에게는 짧은 기간이나마 영화인으로서 놀라운 경험과 기회를 함께 열어간 동료이자 나를 진심으로 인정해준 선배였다.
그의 명복을 빈다.
'나, 그대,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대한 갈림길 (0) | 2020.12.17 |
---|---|
김기덕 감독 추모에 덧붙임 (0) | 2020.12.13 |
받아들임 (0) | 2020.12.06 |
생명의 신비 (0) | 2020.12.04 |
해님 달님 - What is to be done? (0) | 2020.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