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이 지역 축구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온 나라가 들썩인다고 합니다.
마치 2002년 월드컵 때 한국 같은 분위기네요.
그런데 이 이벤트의 중심에 박항서라는 한국인 축구 감독이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놀라운 인품과 실력으로 베트남 축구 국가 대표팀을 이끌어온 분이라지요.
이 분의 역할이 베트남 내부와 한국 내부, 그리고 양국 관계에 중요한 역할과 아름다운 영감을 제공합니다.
우선 베트남 내부에 불러 일으키는 효과입니다.
베트남은 문화적, 정신적으로 매우 강력한 나라입니다.
미국 내에서도 베트남 사람들의 능력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여기 한국분들 말로는, 하다 못해 갱단도 베트남 갱이 가장 무섭다는군요^^
이 나라는 중국과 서구 열강의 혹독한 침략의 역사에서 끈질기게 살아 남았습니다.
20세기 들어서는 자기 땅에 들어온 미국과 맞붙어 살아 남았죠.
우리는 "월남 패망"이라고 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지만
베트남 입장에서는 세계 1등 국가에 맞서 조국을 지켜 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베트남 전쟁은 미국 자체의 현대 역사에서도 하나의 분수령을 이룹니다.
이제 베트남은 회복과 성장의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아주 젊고 역동적인 나라죠.
축구에 열광하는 거리 분위기에서 보듯이.
그런데 이들 또한 한국과 마찬가지로 남북 분단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통일은 되었다 하나 차이와 갈등이 없을 수가 없겠지요.
박항서 감독이 이 부분에 어떤 역할을 해낸 겁니다.
남과 북 출신의 선수들을 고루 등용해서 하나의 팀으로 엮어내고
가장 중시하는 축구 대회에서 우승을 했으니까요.
스포츠를 통하여 국민 전체의 통합을 진전시킨 것이죠.
두번째로 중요한 변화는 베트남이 한국을 고마운 형제 나라라고 부른다는 겁니다.
우리는 미국 -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쪽에 서서 참전을 했습니다.
잔혹한 학살자의 역할을 했다는 것도 이미 너무 많이 밝혀져 있지요.
일제 침략을 겪은 우리가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들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우리에게 가지고 있을 상처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베트남에서 사업하는 한국분들에 따르면
베트남 사람들은 이 문제에 굉장히 "쿨하다"고는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역할을 한 것일 뿐"이라고 이해 한다네요.
그렇다고 일어난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러한 역사적, 집단적 감정을 박항서라는 한 개인이 완전히 뒤집어 엎은 겁니다.
이는 한국 내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베트남 전쟁은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하나의 상처입니다.
그 당시의 자료나 사진, 증언들을 접하면 매우 고통스러운 감정이 들거든요.
한국인들의 집단 의식 안에 죄책감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뜻입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치유 과정에서 가장 무겁고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죄책감입니다.
치유가, 영성가들이 사회와 나라, 땅의 치유를 할 때 감당해야 할 커다란 숙제가 되는 것이죠.
박항서 감독이 이 짐을 덜어준 겁니다.
이것이 한국인들의 집단 의식 해방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한국 안에서 이번 축구대회를 다루는 방식, 그에 대한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언론이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베트남의 결승전을 생중계 한다던가
이를 국민들이 함께 즐기고 기뻐합니다.
베트남과 박항서 감독이 한국 사회에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영감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히딩크 효과를 상기시키는 것이죠.
히딩크 감독은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감독을 맡아
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습니다.
축구는 유럽과 남미의 전유물일 뿐 우리는 아시아 정도에서나 통하는 이류라는
오랜 경험에 기초한 무의식적인 신념을 갈아 엎은 겁니다.
우리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빠른 시간에 일류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생생한 방식으로 전 국민에게 각인시켰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보기 시작했고,
모든 게 원칙에 충실하면 되는 거라는 뼈저린 진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비단 축구에만 해당하는 교훈이 아니었습니다.
현대사를 주도해온 엘리트 계층이 우리에게 심어준 믿음 체계,
원칙을 어기고 편법과 불공정을 감행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경제 발전을 위해서 부득이한 필요악이라는 수십 년간의 관행이
얼마나 허구적인 거짓인지를 까발렸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히딩크 감독과 함께 일하며 성장한 지도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발붙이지 못하고 베트남으로 옮겨 갔지만
그는 마치 히딩크가 한국에서 보여준 모습을 복사한 듯이
베트남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결과를 똑같이 창출해 냈습니다.
우리는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원칙과 정의, 정서적 공감과 포용이라는 것이 어렵고 예외적인 무엇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통하는 가장 효울적이고 위대한 기술이라는 것을.
한국과 베트남이 공유하는 이 경험은
양국이 역사적인 상처를 넘어서서 화해와 일치로 나아가는 것은 물론
아시아 전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강대국이던 일본이 정신적으로 리더 자격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이 그 자리를 떠맡게 되리라는 것은 여러 분야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습니다.
박항서라는 한 개인이 상징하는 역할이 몹시도 심오하군요.
저는 이렇게 우연처럼 보이는 현상을 통하여
신의 아름다운 섭리가 어떻게 우리를 돕는지 실감합니다.
신은 우리를 거저 돕지 않습니다.
스스로 돕는 자를 슬쩍 거들 뿐이죠.
그래서 저는 주기도문의 아름다운 구절 하나에 다음과 같이 덧붙이곤 합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As above, so below"
"나를 통하여 throug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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