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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문답

힐러 워크샵 10. 무엇을 어떻게 내려놓는가

HaloKim 2022. 10. 27. 03:39

힐러들 중에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은 채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경험으로 알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나네요.

비움은 유능함으로 직결되고요.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아상 - 자존심과 우월감이든 억울한 피해자 의식이든 - 을 내려놓으면 안팎에 자연스럽게 연결되죠.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즉각.

 

비법은 있을 리 없어요.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영적 원리를 조금씩 꾸준히 실천하는 것, 한 번 깨치는데 안주하지 않고 매일매일 조금씩 더 새로워지는 것.

 

일신우일신 - 에버 어센딩.

노자, 장자 등 동양 영성의 대가들이 강조해오신 "무위" 혹은 불교 영성의 "무아"가 이런 뜻일 것 같아요.

 

1. 비우는 단계와 방법

 

무엇을 비우라는 말인가?

<장자>에 나오는 비유는 이렇습니다.

 

어떤 목수가 북틀을 만드는데 그 솜씨가 놀라워서 나라의 권력자가 물었습니다.

목수의 비법은 이러합니다.

 

- 북틀을 만들 때 애써 기운을 소모하지 않는다

- 마음을 명상 상태로 평화롭게 만든다 (재계)

- 며칠간 재계하면 외부적인 유익과 손해에 대한 생각이 멈춘다

- 더 긴 날 동안 재계하면 에고의 위치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비난, 칭찬, 잘하고 못함)

- 더 오래 하면 자신이 어떻게 일할 것인지도 생각할 필요가 없어진다

- 그 상태에서는 세상의 큰 일조차 안중에 없고, 오로지 안으로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된다

- 그 때서야 산에 들어가 나무의 성질과 모양을 살핀다

- 마음 속에서 온전한 북틀을 상상한 다음에 손을 댄다

- 자신의 본성과 나무의 본성을 합치시키면 신기에 가까운 성취가 이루어진다

 

사람의 4바디 -온 존재 전체- 를 치유한다며 돈을 받는 이들이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저를 비롯해 이 곳 힐러들은 저 목수에 터무니 없이 못 미치나 오직 그렇게 되고자 하는 염원으로, 참여자들로부터 받는 돈과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며 자기 치유와 성장에 헌신합니다.

 

2. 매일의 실천이 운명이다

 

힐러로서 유능해지는데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자신을 치유하는 것 외에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모색, 꾸준히 한 걸음 한 걸음 멈춤없이 내딛는 사람은 결국 시간의 선물을 스스로 받습니다.

이 또한 <장자>에서 설명됩니다.

 

깊고 험한 물 속에 뛰어들어 유유히 헤엄쳐 나온 사람에게 특별한 비법("도")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 내게는 도가 없다. 버릇이 성격이 되고 성격이 운명이 되었다

- 소용돌이와 함께 들어가 솟아오르는 물길과 함께 물 위로 나온다

- 조건에 따라 대처하는 것이지 내 식대로 힘을 쓰지 않는다

- 이것이 험한 물 속에서 헤엄치는 방법이다

 

3. 자신의 창조에 100% 책임지기

 

5년 동안 수십 명의 힐러들이 동일한 출발선에서 시작했습니다.

저는 똑같은 기회를 제공했고요.

 

학력, 경력, 나이, 직업, 개인적 관계, 대가 등은 일절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4바디 힐러의 정체성과 태도를 분명히 하면서 참여자들께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 유일한 거래 조건이었어요.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치유가/영성가를 자처하거나 남이 만들어준 타이틀이 성장과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거예요. 

 

자기가 살아온 생존 기술 - 능력, 경력, 지식, 착함 이런 거 붙잡고 있을수록 오히려 늦고, 그 시간만큼 발전이 지체되면서 결국 뒤쳐지드만요.

 

"나는 충분히 잘 하는데 왜?" 

"이 정도 하고 그 돈 받을 만 하지, 뭘 더 하라는 거야?"

"내가 너보다 더 나은데?"

"난 바뀌고 싶지 않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손님이나 연결시켜 줘"

"너는 살 만 하니까 이런 거 하겠지.  나 먹고 살기 힘들단 말이야"

"내가 잘못한 거 왜 따져? 나는 억울해"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 너는 다 잘 했냐? 확 폭로해버릴까보다"

 

이런 태도의 여파가 참여자들께 고스란히 전가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공동체 전체가 비루함으로 썩어들어가고요.

 

다시 <장자>로 돌아가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주위에서 수양 부족이란 말도, 어려움 속에 용기 없다는 말도 듣지 않는다. 그런데 내 처지가 왜 이러냐. 운명이 왜 이 지경인가?" 탄식하는 이에게 현명한 이가 답했습니다.

 

- 어떤 일을 한 다음 인정받으려 내세우고, 위치성 게임 하고, 지식 가지고 남 감탄시키려 들고, 자기가 수행한 걸로 남 분별 하고, 자기를 드러내는데 몰두하면 보통 사람들 사이에 끼어 사는 것만도 감지덕지 해라. 무슨 운명 탓을 하냐

-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러고 나서 현자는 혼자 탄식합니다.

그 사람의 상태와 선택에 맞지 않는 말이라는 거예요.

 

새는 강과 숲에 살며 진흙 속 미꾸라지 잡으며 살게 해줘야 하는데, 붙잡아 놓고 귀한 음식 대접하고 음악을 연주해봐야 새를 죽이는 일밖에 더 되겠냐고.

예수가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고 한 말과 같습니다 (아래 포스팅)

 

영적 원리와 물질적 창조 원리의 통합 - 상위 차크라와 하위 차크라의 조화를 강조하신 비유들이라고 해석됩니다.

 

삶의 원리를 무엇으로 선택하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몫입니다.

선택에 옳고 그름은 없고요.

 

그에 따른 창조의 결과를 스스로의 책임으로 받아들일 뿐이고, 이는 영성의 첫 출발입니다.

에네세 공동체에서 힐러를 하는 이들이 배우게 될 첫번째 삶의 교훈일 것 같습니다

 

https://halokim-healer.tistory.com/624

 

친절을 베푸는 방법 - Don't cast your pearls before swine

경전급 텍스트는 내 이해도에 따라 끊임없이 다르게 읽힌다. 높은 수준의 영적 원리를 함축하는 단순한 문장일수록 더 그러하다.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과거의 내가 예수님을 왠지 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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