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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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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로의 치유와 성장

풍요는 어떻게 창조되는가?

HaloKim 2018. 12. 24. 03:53
10년 전 제가 “치유”라는 이름으로 삶의 방향과 영성의 방법론을 전환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제 생의 모든 측면이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건강, 직업, 재정, 관계 등 전부 0으로 수렴하는 상태였죠. 수명이 1년을 못 버티겠구나, 알 수 있었어요. 40대 중반의 나이에 그 어느 것 하나라도 회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저는 3년 단위로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어요 ㅎㅎ

이제 살겠구나 싶을 때까지 3년 걸렸고, 모든 측면이 일정 수준으로 회복되는 데 다시 3년 정도 걸렸습니다. 새로운 꿈을 실현하는 데 또 3년, 그리고 2018년은 네번째 꿈을 덧붙인 한 해였습니다.

올해는 특히 재정적으로 애초에 설정했던 목표가 실현된 해입니다. 별 것 아니지만 그 때의 제게는 공상이나 망상이라고 할 숫자.

지금의 제 상태는 전반적으로 아주 평범합니다. 그리고 평범함의 위대함을 잘 압니다. 평범한 노력이 어떻게 결실을 맺고 심지어 숭고함으로 전환되는지, 그 메카니즘을 습득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치유는 영적인 지름길spiritual shortcut이고, 삶의 공학life engineering입니다.

풍요와 관련하여, 바닥에서 일어서고 있는 저의 경험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하나의 원리에 올인합니다

영적인 원리와 물질계에서 주입받은 원리는 서로 상충됩니다. 대부분의 영성가들은 두 가지 원리 사이에서 오락가락 합니다.

자신의 원리를 결정하면 좋겠습니다. 어느 쪽이든 하나에 올인하는 사람이 솔직해 보이고, 타인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그것이 성공을 만들어 냅니다.

저는 치유의 원리를 택해서, 그것에 올인 했다고 말하겠습니다.

2. 두려움은 넘어서라고 있는 것이다

소설 <칼의 노래>에서 제일 감동을 받은 부분은 이순신 장군이 너무나 두려움이 많은 나머지 수시로 잠을 설치고 식은 땀을 흘리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난중일기>에 그렇게 적혀 있다고 합니다.

겁 없는 사람이 발휘하는 힘을 용기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자주 두렵지만 익숙한 상자 속을 벗어나려고 매번 한 걸음 내딛는 것을 용기라 부릅니다.

그러다 보면 깨우칩니다. 두려움이 일어나는 이유는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없을 거라고 겁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지점에서 성장을 이루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경보음이겠구나.

마치 내비게이션이 전방 몇 미터 앞이 어떠하니 미리 준비하라고 알려주는 목소리 같은 것.

3. 현존하는 삶의 원리를 존중합니다

영성과 지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현존하는 삶의 질서를 경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제점을 아는 것과 경멸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이런 태도는 결국 그 사람을 이상주의로 이끌 뿐입니다. 현실의 질서와 인간들에게 문제가 너무 많아서 나는 짜증난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아무도 그렇게 안 산다, 아, 피곤해…

결국 현실이라는 것을 자신의 개념과 전혀 반대의 대척점에 서 있다고 믿게 만듭니다. 거대한 이원성에 스스로 갇히는 거죠.

내가 삶을 경멸하면, 타인이, 돈이 나를 적으로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또 내 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뼈 빠지게 노력people pleasing 하며 살까요.

모든 이의 삶을 분별이나 비난 없이 바라볼 수 있을 때, 그래서 그들의 동기와 욕구에 진실로 공감할 수 있을 때, 내 삶의 이원성이 해소됩니다.

그렇다고 제가 모든 삶의 원리에 동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차가운 편에 가깝습니다. 단지 각자 살도록 존중할 뿐이죠. 안타까울 수는 있어도 틀린 삶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누구의 삶을 이래라 저래라 컨트롤 할 권리는 없습니다.

아울러 내 방식에 대해서 경계선을 설정하고 보호하는 역할은 전적으로, 100% 내 책임입니다. 다른 누구 때문에 내가 못 살겠다고 하는 사람의 말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 희생자 의식에 사로잡힌 인간 에고의 뻔한 돌림노래라고 생각할 뿐이죠.

4. 나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노자가 그래요. 성인은 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을 작은 생선 뒤집듯이 정성을 기울이는 사람이라고. 그러다 보면 큰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나는 큰 일을 할 사람이라고, 그래서 남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헛똑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순진한 사람보다 이런 헛똑똑이들이 자기 인생을 더 크게 말아먹고 주변에 민폐 끼치며 사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지요.

5. 일상을 그저 삽니다

목표와 방향을 정한 다음, 그냥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성취하는 데에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과정이란 시간과 힘을 투여한다는 뜻이구요.

그렇게 하기로 내가 결정했으니 그렇게 꾸준히 하는 것, 즉 자신에게 헌신하는 겁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돕고 있는 사람을 하늘은 적절한 방법으로 돕습니다.


Ps. 
올해 초에는 제가 풍요 워크샵을 개최 했었는데요, 2019년을 위한 풍요 워크샵은 다른 힐러 분들께 맡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