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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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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사례

에센 투어 후기 공유합니다 - 1

HaloKim 2022. 12. 1. 07:23

이강희 님이 보내오셨네요.

조선을 바라보는 찢겨진 시선 대신 그 성취와 한게를 합리적으로 성찰하고 연속선에서 사유하자는 투어의 취지를 짚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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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에요 샘 
다녀와 얼얼..해서 쓰고 싶을 때까지 기다렸어요 

<수원 화성이 지키려 한 건 무엇이었을까> 

에세네 공동체에 발을 들인 지 2년 반이 좀 넘어간다. 그동안 나도 소위 메가 트렌드라는 그느무 치유라는 것을 좀 해보았다. 
성장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뚜렷하고 굵직한 사건들은 저절로 기억이 되어 있었지만 그 사건 당시 내가 느낀 감정조차도 머리 속에서만 맴돌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게 그닥 오래되지 않았다. 

헤일로 워크샵에 몇 번 참여하면서 이런 내적 변화들이 급격하게 일어나던 즈음 에센 투어에 참여하게 되었다. 
에세네다운 일이 벌어졌다. 
톡방에 모이자마자 투어에 대한 각자의 반응들이 튀어나온다. 맡은 바 일을 해내려는 마음도 있고 친구들이랑 놀 생각에 수학여행 가듯 들뜬 마음, 참가하고 싶었으나 불발되서 속상한 마음을 향해 표현되는 각각의 마음들까지. 
여기에 투어 일정 한 달 전부터 자발적 지원에 의해 4개의 세미나 팀이 꾸려졌다. 주제는 18세기 조선의 사회경제사, 18세기 조선의 정치 지형, 정조의 생애, 수원 화성의 정치경제적 비전과 건축학 도시공학적 의의. 헤샘이 주제 공지 띄우자마자 비명을 지르고 앓는 소리 하는데도 이상하게 톡방에서 신나는 기분이 느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팀별 미팅이 일어났다. 나는 개날라리 팀 소속. 딱 모여서 얘기를 나눠보니 구성원 모두 한 오지랖 하는 인물들 같았다. 오지라퍼가 개날라리 되는 건 쉽지 않다. 진심을 다해 열심히 하지 않기로 했다. 각 팀 모임을 거쳐 중간 점검 한 번, 한 번의 전체 미팅 그리고 투어 당일 선경 도서관 헤샘 강의 전 각 10분 씩 팀장들의 발표가 있었다. 

발표를 듣는 동안 18세기 조선에 대한 이해가 섬세해지는 느낌. 내가 입은 상처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사건의 이면을 치유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었던 것처럼 당파 싸움, 붕당 정치에 대한 혐오 감정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18세기 당시 조선의 사람들이 느껴졌다.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상처를 안은 채 치열하게 삶을 살아낸 사람들, 다양한 방식으로 공존을 모색하던 이들, 군주로서 그들의 리더 역할을 담당했던 정조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모든 이들의 유토피아 수원 화성. 

팀별 발표 후 이어진 헤샘의 강의는 유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대물림된 여러 고루한 선입견에 틈을 벌려 그 밑에 흐르고 있는 성리학을 바라보게 했다. ‘성’’리’학이 본성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면 그게 곧 영성 아닌가라는 메세지를 접하면서, 치유를 통해 나의 성장과정을 좀 더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듯이 조선이라는 나라와 그 시대를 살아낸 나의 조상들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누그러들고 연민하고 공감하는 마음으로 동질성을 느끼게 되었달까. 헤샘이 나누어준 강의자료에 첨부된 다양한 치유 제안 중 ‘조상체’ 치유가 가슴에 훅 들어왔다. 

그 마음으로 수원 화성을 걸었다. 며칠 전 셀프 동조해둔 카루나레이키 심볼들을 떠올리며 뽁뽁 소리나는 신발을 신은 어린 아이처럼 발에서 뽁뽁 심볼이 나가 땅으로 스며들어 정조의 죽음으로 꿈이 불발된 후 많은 이들이 느꼈을 좌절감이 풀려나가 새로운 도전을 향한 동력으로 사용되기를 염원하며. 

그 길 위에 각자의 방식으로 치유를 하며 걷는 20여 명의 나의 동료들도 있었다. 길치인 내가 길을 잃어 당황하면 어디선가 나타나 안내해주는 동료가 있었다. 길치여도 괜찮았다. 웃고 떠들며 사진 찍다가도 어느새 진지해져 묵상과 기도를 하는 동료들, 자유로이 마치 공원에 나온듯 성 안팎을 노니는 시민들을 바라보며 화성, 당신이 지키려한 게 무엇이었나 질문해보았다. 저토록 평범한 평화를 지속 가능하게 하고 싶었다는 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 그걸 지키기 위해 화성이 택한 방식은 자연을 일방적으로 자르고 파고드는 방식이 아니었다. 봄에 돋아나는 새싹이 땅에게 물어가며 틈을 찾아 솟아오르듯 자연과 정중하게 소통하는 마음으로 돌을 하나 하나 쌓아 조화롭게 거기에 그냥 자연으로 있었다. 어떤 배제도 없이 수용하는 느낌으로 평화를 지키며 소통하며 숨쉬는 경계처럼 춤추듯 놓여진 화성을 보며 나는 왜 ‘나는 무엇인가’ 정체성을 묻는 것으로 시작하는 에세네의 윤리코드가 떠올랐을까. 

식사 후 밤 9시 시작해 새벽 3시반까지 이어진 강의와 대화와 치유 명상과 나눔 시간 동안 운동권 학생으로 노동운동으로 한 때 맹렬했던 20대의 무수한 엠티가 떠올랐다. 진보와 보수,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 틀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어딘지 갑갑하게 갇혀 있던 느낌이 옅어지고 그 자리에 들어오고 있는 다른 관점들, 붕당정치 속에서 새로운 관점의 답을 찾고자 했던 조상들, 그들의 빛과 그림자를 온전하게 있는 그대로 보면서 그 한계를 딛고 또 한 발 걸어보자 제안하는 관점들, 그 관점을 공유하는 동료들에게서 쏟아져나오는 에너지들이 호기심과 즐거움을 불러오고 있었다. 

우리는 다음 날 북수원 성당도 가고 봉녕사라는 절에도 갔다. 몇 시간 잠도 안 잔 이들이 우째 그리 쌩쌩한지. 감정이 그대로 오고 가는데 별 탈 없이 웃고 떠들고 울고 감동하고 평화로웠다. 그동안 감정을 억누르는 데 쓰던 힘을 안 써서 힘이 남아 돌아 그리들 쌩쌩한 건가. 헤샘이 막노동을 하면서도  회복이 빠른 비결을 슬쩍 이해하게 된 거 같기도 했다. 나는 동료들과 나누는 솔직한 소통이 계속 재밌었다. 전날 길을 잃어 서장대까지 올라갔다오고 20년 만에 운전에 도전했어도 마지막 커피숍 수다 역시 즐길만한 힘이 계속 내 안에 있었다. 

정조와 정조의 신하이며 동료였던 이들과 정조가 독살되었다 굳게 믿을 만큼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백성들, 나의 조상들이 꾸었던 꿈이 실패로 끝났다 말하겠는가. 내게 물어보았다. 내 삶의 무엇을 실패라 하겠는가 묻는 질문으로 들렸다. 실패라는 단어 대신 한계라는 단어로 바꿔 말하고 싶었다. 내 상처를 스스로 돌보지 못하고 살아왔던 삶이 나 자신을 오직 희생자와 구원자 사이에서 진동하게 하여 많은 가능성들을 보지 못하게 하고 관점을 제한하여 나를 한계지었다 기록한다. 그리고 이제 나의 동료들,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우며 살겠다는, 거죽만 늙었지 속에 젊음을 품고 있는 나의 동료들과 함께 수원 화성을 걷듯, 진보와 보수 그 너머를 바라보며 새로운 길을 걸어가보고 싶다.